대전을 잘살펴보면 알려지지 않는 옛날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신탄진과 읍내동을 연결하는 천변고속화도로의 아래쪽에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니어서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철상과 자동차 중고부품, 공업사 등만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강을 건너는 나루터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일명 배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갑천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배를 묶어두었던 것입니다.
옛날의 흔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디테일한 눈이 필요합니다.
대전 대덕구에서도 안쪽으로 들어와 있으며 읍내동에서도 자주 찾는 곳이지만 최근 도로가 개설되고 있었다. 앞쪽으로 다가가면 자연석에 암각을 해놓은 현감한공성보몰세불망비가 남아 있습니다. 일명 배바위인데 비석으로 세워지는 일반적인 불망비와 달리 바위에 직접 각자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현종 때 회덕현감을 지낸 한성보가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1670년에 새겼다고 합니다.
이은정 한성보는 사계 김장생의 외증손으로 김장생의 아들인 신독재 김집과 우암 송시열에게 학문을 배웠습니다. 회덕현의 수령이 되어 근무한 것이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의 치세가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성보는 1689년 장희빈이 낳은 아들(뒤의 경종)의 세자 책봉이 시기상조라 하여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미움을 사 결국 사사당하는데 이때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에 묻혀 독서로 소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실제 배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갑천이 흐르고 있다. 둔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대청호로 가는 길목이 나옵니다.
회덕의 유명한 인물 동춘당 송준길과 우암 송시열도 이곳에서 배를 탔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대전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거의 매일 보는 갑천의 옛 이름은 영원하다는 이름의 만년의 만년강(萬年江)이었다고 합니다. 회덕이 공주목 관할이었을 때 살기 좋은 곳으로 충청도 공주 계촌(溪村)이 택리지에 등장합니다. 계촌이 바로 갑천을 의미한다.
이곳을 흐르는 물의 시작은 벌곡면의 대둔산 국립공원에서 발원하여 평탄지형인 대전을 휘감아 유등천, 대전천을 아우르고 신탄진 신대들에서 금강 본류를 맞이하여 그 맡은 일을 다 하고 갑천 이란 이름은 사라지게 됩니다.
불망비를 보셨다면 읍내동의 중심으로 들어오시면 석장승도 볼 수 있습니다.
석장승의 장승문화는 선사시대부터 동굴에다가 벽화를 그리고 하늘에 기원을 하고 솟대를 만들고 신성해 보이는 동물에게서 적당한 비와 햇볕이 비추기를 기대하면서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 것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믿음은 공동체의 안녕보다는 개개인의 안녕을 비는 것으로 변하였다고 합니다.
지역 간의 경계로 삼거나 성문이나 병영(兵營)·해창(海倉)·관로(官路) 등에 세운 공공 장승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읍내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다른 곳을 구분했던 것으로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석장승이 있는 곳에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덕을 품은 굴다리 이야기 거리가 나옵니다. 읍내동은 회덕관아가 있던 곳으로 선정을 베풀었다는 한성보가 근무하였던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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