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는 장관이라는 직책을 오래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는 명망 있는 선비들이 하나의 직책을 오래 하며 많은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동춘당공원이 대표적인 고택이지만 대덕구에는 제월당 및 옥오재라는 고택도 남아 있습니다.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송준길 등과 동종(同宗)·동향(同鄕)으로 함께 삼송(三宋)으로 일컬지던 송규렴과 그의 아들 송중기의 고택입니다.
역사속에서 파동은 미시적, 거시적 사건들을 동시성 현상 속에서 동조시키는 공명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역사적인 사람들과의 묘한 이어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역사적 의미라고 하면 역사적으로 선구자이기도 하고 탁월한 발견을 했던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파동을 만들어냈습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에르븐 슈레딩거, 볼프강 파울리, 유진 위그너를 위시한 선구자들에 의해 양자역학과 생물계, 의식 사이에 상응성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옥오재 송상기는 대제학이라는 벼슬을 무려 15년간이나 한 사람입니다. 대제학은 권위와 명망이 높았으며 문과 출신 관료의 최고 영예로 간주되었으며 정2품직. 전임직이 아니라 타관이 겸임하는 겸직이라고 합니다. 때로 종2품관도 임명했습니다.
송상기는 고택의 이름이기도 한 옥오재집이라는 글을 썼는데 옥오재집의 편찬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극히 적다고 합니다. 1760년(영조36) 송상기의 손자 송재희(宋載禧)가 쓴 발문(跋文)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지금 대전은 코로라 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공원등이 모두 잠정 폐쇄되었는데 항상 오픈되어 있는 동춘당공원역시 현재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월당 및 옥오재는 공개되어 있는 동춘당공원과 달리 보통은 닫혀 있습니다. 송상기는 숙종대에 벼슬을 했던 사람이며 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숙종은 1674년 왕위에 올라 1720년 승하(昇遐)하기까지 46년의 재위 기간 동안 세 차례 환국(換局)을 단행하였습니다. 1680년의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과 1689년의 기사환국(己巳換局), 그리고 1694년의 갑술환국(甲戌換局)이 그것입니다. 장희빈을 내세운 남인과 서인과의 권력주도권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도 환경에 따라서 능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법칙을 코이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코이라는 물고기는 사는 곳의 크기에 따라 5cm에서 무려 120c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은진송씨의 흔적만 자세히 살펴보아도 역사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살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송상기는 현재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속하는 회덕(懷德)에서 성장하였으며,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과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에게 수학하였습니다.
회덕에 머물렀던 은진송씨의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제월당 송규렴과 옥오재 송상기, 동춘당 송준길, 쌍청당 송유와 회덕에 살았던 송남수의 집에서 태어난 송애 김경여를 읽어봅니다.
후손들이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제월당 및 옥오재는 전통적인 고택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현왕후가 왕자를 낳지 못한 가운데 1688년 소의 장 씨가 아들 균을 낳자, 숙종은 균을 원자로 삼아 명호를 정하고 소의 장 씨를 희빈으로 봉한 것이 기사환국인데 이때 송상기는 송시열·김수항(金壽恒) 등이 사형당하고 남인이 집권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회덕에 머물렀습니다.
이후 조정에 나아간 송상기는 경종이 병이 있으므로 세제에게 청정(聽政)을 시키자고 여러 대신들과 더불어 상소하였는데 이 일로 1722년 신임사화를 입어 강진으로 유배되어 이듬해 배소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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