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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이충무공의 영정과 어제 신도비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8.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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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영정은 유성룡의 징비록에서 표현된 이순신의 모습을 보고 그려놓았다고 한다. 류성룡의 징비록에서 이순신 장군이 적지 않게 표현되어 있다.

 

징비록에 거론된 이순신 장군의 표현중 일부를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이순신의 자는 여해이며 본관은 덕수이다.

그의 조상 가운데 이변은 벼슬이 판부사에 이르렀는데 강직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도한 증조부인 이거는 성종임금을 모셨는데, 세자 연산을 가르쳤으나 너무 엄하다 하여 꺼려했다. 그가 장령으로 일할 때에는 탄핵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모든 관료들이 호랑이 장령이라 불렀다. 할아버지인 이백록은 가문의 덕을 입어 벼슬을 했으며, 아버지 이정은 벼슬에 오르지 않았다.

 

 

 

기념관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똑똑했고 활발했다. 아이들과 놀 때도 나무를 깍아 화살을 만들어 놀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보면 눈을 소려 하였다. 그래서 어른들조차 그를 꺼려해서 그의 집 문 앞을 함부러 지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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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정하였으며 항상 마음과 몸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담력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 또한 평소 그의 뜻이 드러난 것이였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어라산에 위치하고 있는 이충무공의 묘소에 가면 어제 신도비가 있다. 공의 유해는 최후 진지였던 고금도로 안치되었다가 발상하여 아산의 금성산에 모셔졌고 그 후 광해군 6년에 현 위치로 옮겨졌다.

 

어제 신도비는 정조가 직접 글을 써 넣었다. 빗버리에 상충정무지비라고 적혀져 있고 이 비는 정조가 이순신 장군을 기리며 손수 글을 내려 만든 것으로 "우리 선조 대왕께서 나라를 일으킨 공로의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공 한사람의 큰 힘에 의한 것이다. 이제 내가 충무공에게 특별히 비명을 짓지 아니하고 누구에게 비명을 쓴다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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