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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맞선 충남 서천 인물 이상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10.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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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 선생(1850 ~ 1927)은 지금 충청남도 서천(당시 한산)에서 태어났다. 이상재 선생의 호는 월남으로 격동의 시기에 태어나 사회운동을 하고 일제에 맞섰던 인물이다. 남을 해롭게 하지 말고 남을 해치지 말라는 말로 한반도를 침략한 일제를 비판하기도 했던 그의 육성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느낌이다.

 

이상재선생은 1896 7월 서재필박사와 함께 독립협회 창립을 주동하여 중앙위원과 부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며 1908년 황성기독교청년회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1927년 신간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으나 곧 운명을 달리했다. 이상재 선생 역시 관직에 꿈을 품고 서울에 올라와서 시험을 치루었으나 부정부패와 매관매직이 심했던 당시 조선 조정에서 낙방을 하게 되고 다시는 관직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이상재 선생은 박정양의 식객으로 10여년을 지내면서 두루두루 세상을 배우게 된다. 1881년 박정양이 신사유람단 단장으로 떠날때 그를 수행하는 수행원으로 일본을 가게 된다. 갑신정변의 주역이였던 김옥균등과 이때 교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개화를 해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충청남도에 있는 그의 생가지가 지금도 복원되어 있다.

일본에 갔다온 후 그는 조선을 개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홍영식의 추천으로 우정총국의 주사로도 일했으나 이후 친했던 일행이 추진했던 갑신정변의 실패로 다시 낙향하게 된다. 수년을 고향에서 지내다가 1887년 박정양의 추천으로 친군영의 문안으로 임명되었고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 국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다시 고향에 와서 지내던 이상재 선생은 1892년 전환국위원, 1894년 승정원우부승지를 거쳐 1896년 국어학교 교장을 맡게 된다. 이 때 서재필, 윤치호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해 독립문을 건립한다. 1898년 독립협회가 정부의 탄압과 황국협회의 방해로 무산되자 낙항햐면서 탐관오리의 부패상을 탄핵하며 자신이 생각한 바를 관철시키고자 했다. 이로 인해 그는 1902년 개혁당 사건에 연류되면서 구금이 된다.

 

1905년 고종의 요청으로 의정부 참찬을 맡았을때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다. 나라의 국운이 쇠함을 한탄하며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을 준비하다가 일제의 통감부에 구속되었고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 당하자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며 민중 시위를 전개하였다.

 

 

고종의 강제 퇴위 되고 나서 불과 3년후 1910년 국권을 강탈당하게 된다. 그는 본격적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을 전개하는데 청년회를 사수하고 제일조선 YMCA를 비롯한 조선기독교청년회 전국연합회를 조직하였다. 이 민간단체는 1919년 3.1운동을 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가 뒤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일제는 그를 감옥에 넣었다.

 

몇개월 뒤 감옥에서 나온 후 전국연합회회장, YMCA운동을 주관, 강연회, 지방순회강연, 조선교육협회 창설,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조직하는등 수많은 활동에 중심에 있었다. 1927년  민족주의진영과 사회주의진영의 단일전선을 결성하고 공동의 적인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목표로 신간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추대외었으나 그해 사망하였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서울(경성)이 들석거리는 일이 생긴다. 그를 추모하는 장례가 처음으로 '사회장'으로 치루어지는데 그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운집한 추모객이 10만 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정도이다.

 

민족의 단결과 일제에 대한 수많은 비폭력 저항운동을 했던 이상재 선생의 생가지는 1955년에 없어졌으나 1972년, 1980년 두 차례에 걸쳐 복원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한일합방 직후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이완용, 박제순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감들은 동경으로 이사를 가시지요'라고 말이다.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뭉스럽게 쳐다보자 이어 '대감들은 나라 망하게 하는 데 선수 아니십니까. 대감들이 일본으로 이사 가면 일본이 망할 것 아닙니까?'라고 조롱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한참 전시작권권을 가져오는 문제를 가지고 전국가가 들썩이고 있다. 정말 나라를 위해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혹시 그속에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깊게 생각해볼때가 아닌가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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