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를 아는 사람은 있을지몰라도 부여에 위치한 홍산이라는 지명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생육신중에 한명인 김시습이 그곳에서 잠들었다. 김시습의 영정은 부여군 외산면 무량사에 소장되어 있고 1976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 64호 지정되었다.
영화 관상등으로 인해 더욱 친숙해진 인물 세조는 단종의 자리를 빼앗아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때 사육신과 생육신이 나왔는데 그중에 생육신은 김시습,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 남효은을 말한다. 매월당 김시습은 어릴때 부터 총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세종에게도 총애를 받았으며 세종이 내린 비단을 현명하게 가져간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 유명한 김삿갓이라는 말도 세조 즉위후에 세상을 등지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김시습은 일찍이 청빈하게 뜻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을 포부로 삼고 살아왔다. 조선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썼던 인물이며 단종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켰던 인물 그리고 배운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니라는 신념을 죽는 그날까지 지켰다.
그의 어린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것 같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재혼하고 자신을 돌봐주던 외숙모가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김시습은 천재 문학가이기도 했지만 다양한 종교의 진리를 탐구하던 사람이였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던 선비 김시습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김시습(1435~1493)은 세종대에 가난한 문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남다른 능력을 보였지만 계유정난이 일어난 1455년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할때 불과 21세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세조정권을 비난하였고 전국을 유람하면서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 '탕유호남록'을 썼다.
김시습은 단종 복위를 시도하다 죽은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에 매장했으며 다른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김시습이 썼다는 금오신화를 보면 주인공들은 모두 현실 세상을 등지고 몽환적인 세상에서 기이한 일을 겪으며 살아간다. 아마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소설속에서 반영되어 그려진듯한 느낌이다.
사진은 충남 부여의 홍산객사이다.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쓴 후에 서울에서 생활하다 강원도를 유람하고 이후에 부여로 가서 죽음을 맞이한다. 김시습은 유학자였지만 불교에 더 심취한듯한 발자취를 보였고 당시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사상을 가진 인물이였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경험과 위정자들의 부패를 보며 남다른 관점을 지니게 되었다. 백성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인물이며 유학, 불교, 도쿄의 장점과 단점을 이해하며 철학을 완성했던 인물이 충남 홍산에서 인생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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