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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으로 보는 한중일 도검전쟁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8.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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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있기 전까지 도검이나 환도등을 자세하게 연구하는 경우가 적다. 충남 아산의 인물 이순신 장군의 박물관을 가보면 도검을 알게되는데 특히 한중일의 도검에는 비슷하면서 다른점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실전용은 아니지만 고전적인 양식의 사인검이 있는데 조선조 중기에 왕들이 장식용으로 지녔던 검이였다. 태조어검, 패월도, 환두대도 다양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검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사용하던 도중에서 관제환도와 군용 환도가 있다. 보통 검은 양날을 도는 외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는 주로 베는데 사용하고 검은 찌르는데 사용된다. 무사의 칼을 환도라고 부르고 여인들 호신용은 장도라고 부른다. 환도란 칼집이 있어서 고리에 끝을 드리우고 허리에 찬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조선의 관제 환도는 말그대로 살상목적이라기 보다는 행사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의 군용환도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장거리에서는 일본은 조총을 조선군은 활을 사용했지만 어디까지나 근접전에서 가장 위력이 큰 것은 도검이다. 현재 한국에는 은장도류의 작은 칼을 제외하고 도검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300점뿐이 안된다고 한다. 일본이 수십만 자루가 남아 있는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조선도검은 도와 검의 구분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고 혼용되었다고 한다. 중국보다 일본보다 짦고 한손 사용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휴대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고 한다. 보통 일본도의 강도를 최고로 치곤한데 조선검의 강도도 그에 못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그 명맥이 끊어졌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중국과 일본의 도검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도검의 경우 조선과 유사하게 도와 검의 구분을 엄격하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에도막부시대에서 메이지시대까지 이어져온 내전으로 인해 조선이나 중국에 비해 실전무기로서 기능적 요소가 가장 발달하였다고 한다. 사진에서 위에 있는것이 일본도검이다.

 

중국도검은 조선이나 일본에 비해 도와 검의 구분이 엄격했으며 한 손 사용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도의 경우 직선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끝부분이 살짝 휜 형태가 많았다. 사진에서 아래쪽에 위치한 것이 중국도검이다.

 

위와 같은 사진들은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 가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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