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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승리의 비밀을 간직한 조선군선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8.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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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이순신장군이 킹메이커라고 할정도로 모든 승리의 중심에 있었다. 이순신 한 사람이 전세를 역전시킬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제 곧 개봉할 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을 재조명하여 각색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은 오래된 내전끝에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중심으로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일본은 사면이 바다라 해군이 강하리라 생각할수도 있지만 일본의 배는 단지 수송능력에 집중하였을 뿐이다. 일본의 침략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조선의 군대와 달리 일본은 오래된 내전으로 강한 육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대륙 진출의 야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땅을 통하지 않고 명나라로 바로 상륙하기에는 많은 리스크가 많이 있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부산으로 상륙하여 단시간에 선조를 사로잡고 조선을 병참기지로 활용하여 명나라 및 동남아까지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벌인 것이 임진왜란이다.

 

 

 

아산 출생의 이순신 장군이 해군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는 노력하는 사람이였다. 설사 전혀 문외한이였다고 하더라도 노력에 의해 조선군선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이해했으리라 생각된다. 조선의 군선은 소나무 판대를 두껍게 써서 튼튼하게 만들어졌는데 덕분에 마찰력이 있어 속도는 느렸지만 안정감있게 방향을 바꾸기가 쉬웠다. 그 유명한 이순신의 학익진 전술은 이를 기반으로 가능하였던 것이다.

 

반면 일본 군선(세키부네)은 속도전에는 적합한 군선이였다. 두터운 소나무로 만든 조선의 군선과 달리 삼나무와 전나무를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판재를 얇게 만들어서 가벼우면서 빨랐다. 속도가 빨랐으나 군선의 무게가 가벼워 대형 화포를 활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의 군선이 돌격해왔을때 군선이 쉽게 부셔지고 폭이 좁아 방향전환이 빠르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활용한 군선은 판옥선으로 갑판을 이중으로 만들어 선체를 높여서 낮은 일본군선의 일본군이 쉽게 올라오지 못했으며 묵직한 배무게 덕분에 조선의 화포를 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나마 판옥선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일본 군선은 대장선(아다케부네)정도뿐이 없었다.

 

 

임진왜란 때 해전에서 큰 활약을 보여준 거북선은 돌격선으로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생각만큼 거북선의 수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거북선은  3층 구조의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상층은 지휘실과 화포를 발사하고 중층은 노를 저을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리라 판단된다. 무엇보다도 거북선을 제대로 활용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였지만 거북선이 만들어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처음 투입하여 승리를 거둔 것은 바로 선조 25년 5월 29일 사천해전때로 알려져 있다. 거북선은 기존 판옥선을 개량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여암 신경준 (1712 ~ 1781)의 "여암전서"에 기록된 것을 보면 '거북선의 아랫부분 선체는 전선(판옥선)과 같은 모양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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