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진 색깔은 얼마나 다양할까?
이 영화가 가진 색깔은 분노이고 공포다. 연기잘하는 다섯배우와 자신의 가능성을 재발견한 여진구의 영화로 괴물로 만들고 싶은 다섯아빠와 그들이 원하는 괴물로 변하고 싶지 않았던 한아이의 처절한 몸부림
대부분의 인간은 분노라는 것을 삭히면서 살아가기도 하고 그걸 분출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자신이 감당해낼 수 있는 분노의 수준은 제각각이다. 보통은 분노의 수위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감소하는데 이는 전전두엽이 성숙하기 때문이다. 여진구가 괴물을 삼킬수 있는것도 그가 소년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잃어버릴것이 없기 때문에 더 무서운 아이 진실을 깨닫게 될때 그가 보여주는 폭팔력을 위해서인지 초반에는 애송이의 모습이 역력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나는 영화는 악마를 보았다의 잔인함과 그를 키우면서 살인교육을 시킬때는 헐리우드 영화 한나의 매정함이다. 장기판에서 왕부터 졸까지 모든 말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것처럼 묵직하지만 잔인함만으로 채워지지 않은 스릴러 영화 화이를 보면서 추리를 해봐도 좋다.
여진구가 좀 가볍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기우였을뿐이다. 엉성해보이는 초반의 여진구의 연기와 영화의 짜임새는 후반부로 갈수록 빈틈없이 채워져 간다. 초반에 몰아치고 후반부에 약한 수많은 영화와 달리 후반부에 집중하라는 감독의 의지가 잘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섯아빠를 둔 화이는 어떤 생각으로 자라났을까? 보통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보편적인 사회적인 관념을 뒤집고 그것도 남성미가 물씬 풍겨나는 다섯명의 아빠가 키워낸 괴물이 되어야 하는 아이. 오디이푸스 컴플렉스처럼 그 역시 그런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돌이킬수 없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도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송두리째 뒤엎을수도 없는 화이는 잔인하지 않은 본성을 가지고 정을 그리워하지만 아슬아슬한 운명의 줄타기 속에 결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괴물이 무서웠지만 결국 그 괴물을 죽이고 자신이 괴물이 되어야 되는 숙명을 가진 아이
친구같은 아빠 조진웅
요즘에야 친구같은 아빠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부모세대만 하더라도 아빠의 이미지는 근엄함이다. 범죄에 가담한 다섯명의 아빠중 비자발적인 의지로 가담한 사람이지만 그 역시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것이다. 그나마 영화에서 웃음을 주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해야 하나. 심성은 착하지만 자신 역시 괴물이 되었고 화이가 괴물이 되지 않기를 바랬던 사람
친구같은 아빠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자식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시대의 아빠모습
잔혹하지만 현실적인 아빠 장현성
이들 조직에서 두뇌를 담당하는 장현성은 자신과 다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 현실적인 아빠이다. 불법을 통해 돈을 벌지만 그 길이 바람직하지 않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빠이면서 화이가 자신과 다른길을 가길 바란다. 언제나 조용하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데 그만의 색깔이 뚜렷해 보인다.
인생에서 자신이 지닌 짐을 그대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아빠들은 없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따라가는것을 보면서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는 아빠모습
표현하지 못하는 아빠 김성균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말그대로 사이코 패스같은 느낌이다. 칼을 다루면서 잔인함으로 모든일을 해결하려는 캐릭터인데 모든 상황에서 죄책감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표현하는것이 서툰 아빠들이 넘쳐난다. 무언가 자식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그냥 겉모습으로만 이해되는 사람
사랑은 표현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 표현방식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그걸 누구한테도 배운적이 없고 누가 정답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렇기에 빡빡한 현실이 야속하기까지 한 아빠모습
미성숙된 아빠 박해준
사람들은 커가면서 자신을 잘 갈마무리하기 마련인데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갈마무리가 잘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행동하는 사람들. 박해준이 화이에서 맡은 역할은 총잡이지만 다혈질의 사나이로 누굴 죽이는데 있어서 멈춤이 없다. 화이와 비슷한 느낌이 있는데 이는 덜 성숙된 그의 정신 상태나 감정 컨트롤때문일것이다.
부모는 모두 정신적으로 자식보다 성숙되었다고 볼수는 없다. 그냥 인생을 더 살았기에 참을줄 아는 법이고 인생의 고난함을 말하는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려고만 하다보니 소통이 부족한 우리시대의 아빠
가장 위험한 가부장적인 아빠 김윤석
이런 아빠들은 보통 좋은 집안(?)에서 많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기업가들, 의사, 법조인들이 아빠인경우 자식이 자신의 길을 그대로 이어가길 바란다. 자식이 자신의 기대에 못미칠때 잔인하리만큼 몰아붙이기도 하고 음악등의 예술은 딴따라라고 치부해버린다. 자신과 닮길 바라면서 화이를 이끌지만 화이는 그 이끔에 부응하지 않는다. 잔인하면서도 냉혹하고 냉혹하면서도 침착한 날선 연기를 김윤석이 잘 소화해냈다.
자식은 자신의 분신이기도 하지만 또하나의 인격체이다. 자신이 가진 생각으로만 자식을 재단하려는 수없이 많은 아빠들의 일반적인 모습
십수년이 지난 시기에 얽히고 섫힌 그들만의 비극을 어떨게 풀어내는지 영화를 보면 알수가 있는데 관객들이 예상했던대로 이야기의 큰 줄기는 소년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다섯 아빠에게 어떤식으로 복수를 하고 그의 뿌리를 어떻게 찾을것이냐이다. 한 아이의 성장기에서 피가 난무하고 모든 캐릭터의 정서가 정상적일 수가 없다.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을 하다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과 분노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악 그자체로 보이기도 하고 악과 거래해서 자신의 영혼을 불태워버리는 연기의 김윤석은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걸어가는 화이에게 같은 물음(두려움)을 하고 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것은 인간이 가진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을 악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석태는 절대악이 되어 두려움을 이긴것 같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이 잠식된것이다. 화이에게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되었던 아버지들. 남자들이 안고 살아야 될 숙명인지도 모를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아버지라는 존재가 이기고 넘어서야 될 존재인것인가?
불확실한 미지에 대한 공포를 우리는 기대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느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하고 군입대, 직장, 결혼, 자식이라는 극복해야 될 대상을 꾸준히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처럼 자궁안에 들어가서 세상에 나오는 핏빛 공포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묵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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