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드라마)

폭풍의 언덕, 거부할수 없는것은 사랑이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2. 7.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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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요크셔 지방, 황량한 들판의 언덕 위에 외딴 저택 워더링 하이츠가 있다. 그곳의 주인 언쇼는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고아소년 히스클리프를 데려온다. 언쇼의 아들 힌들리는 일방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하지만, 딸 캐시는 마치 운명처럼 히스클리프와 사랑에 빠진다. 저 스토리를 보고 있자니 책좀 읽었다는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듯 하다.

 

브론테 자매의 걸작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샬롯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는 각자 제인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발표했다. 비극적인 폭풍의 언덕과 달리 해피엔딩인 제인에어는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폭풍의 언덕은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을 말하고 있다.

 

책에서 히스클리프는 스페인 집시이지만 영화에서는 흑인으로 등장한다. 당시의 흑인과 백인의 사랑이라? 조금은 희박한 구성이긴 하다. 역시 동양인들도 차별에서 자유로울수는 없었다. 폭풍의 언덕에서의 주요인물들은 모두 죽게 되는데 비극이다. 영화속에서 히스클리프는 무엇을 가지고 있었을까? 지금의 한국사회로 말하면 백없고 돈없고 교육도 못받았다. 게다가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마치 카스트제도로 보면 가장 하위층에 위치하지만 사랑 하나만은 건진 사람이다.

 

 

 

 

사랑하나만을 믿고 살아온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폭풍의 언덕이 매우 진실되게 다가올듯 하다. 주인공이 한 여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끝까지 변하지 않는것을 보면 마음의 순수는 지금의 물질만능주의사회에서도 의미있는 일이다. 19세기는 낭만이 주를 이루던 낭만주의 시절이였다.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죽음을 택하는 그런 낭만이 있었던 시대이다. 19세기에는 배경이 아름다운 풍경화가 상당히 유행했던듯 하다. 실제로 풍경을 보고 그리는 풍경화와 달리 마음속의 풍경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때가 있다.

 

영화는 결국 복수를 그리고 있다. 이런 형태의 복수와 비슷한 느낌은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비슷한것 같다. 성공한 사람으로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사랑을 저버린 애증의 캐서린이나 사랑을 빼앗아간 애드거 그리고 자신을 학대했었던 힌들러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댄다. 힌들러의 집을 빼앗아 버리고 캐서린과 애드거 사이에 들어가 모든것을 흔들어버리면서 모두를 파멸의 열차에 태워버린다.

 

마치 악마를 보았다처럼 복수를 위해 모든것을 바쳤지만 결국 자신에게 남은것도 파멸이라는것을 몰랐던것일까? 그래서 사람이란 우둔한 모양이다. 복수는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는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듯 하다.

 

영화는 소설을 읽는것보다 너무나 함축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조금 힘든편이다. 철학적인것을 담고는 있지만 너무나 함축적으로 이야기 해서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상영시간내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기분을 착잡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게다가 히스클리프의 시선에서만 보기때문에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사랑, 상실감, 아픔같은것외에 보이는것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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