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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유일한 만세운동인 주렴산 기미독립만세운동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9. 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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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에 여러 산이 있지만 주렴산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주렴산은 3.1 독립만세운동 중 충남 최초(1919.3.16)이고, 보령 유일의 만세운동 발원지로 주산면민들의 자부심으로 남아있어 더욱 남다른 의미를 갖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연하게 아래쪽에서 보령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만난 기록들입니다. 주렴산은 351m의 주봉인 국수봉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웅천 접동굴, 남으로는 서천까지 이르는 3㎞의 마치 구슬을 꿰어 늘어놓은 염주 같다하여 주렴산이라 불리게 된 산이라고 합니다. 




주렴산 기미만세운동은 주산출신 이철원 선생이 학생전위대로 독립운동을 하던 중 3·1독립만세운동 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고향에서 만세를 불러야겠다고 결심, 애국지사들과 주렴산 국수봉에 올라 횃불을 밝히며 태극기를 산 정상에 꽂고 독립선언서에 혈서로 서명한 후 징을 치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주산면 청년회에서는 주렴산 기미독립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매년 진원지 환경정화 활동 및 추모제를 시행하고 있다.



서슬퍼런 그때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도 했지만 KBS프로에서 보듯이 한국 사람들이 한국사람을 고발하는 밀정들도 활약을 하던때였습니다. 



지금은 조용해보이는 마을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 삼일운동은 한일합병이 되고 나서 9년 만에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찾겠다고 일어선 비폭력 운동이었습니다. 전까지는 국가가 국민의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특정 계층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했지만 나라를 빼앗기고 나서 비로소 일어난 것입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까지 만세독립운동의 불길을 퍼져나가게 됩니다. 


주렴산이 자리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웅천읍이 있습니다. 




웅천읍을 관리하고 행정적인 업무를 했던 면장들의 공적비가 강가에 세워져 있습니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독립시위는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 등 북한 지역에서도 서울과 비슷한 형태의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가 전개되게 됩니다. 삼일운동 당시 비폭력운동으로 전개되었지만 일제는 폭력으로 진압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제는 정규군으로 육군 제20사단 및 제40 여단을 서울 서울 용산에, 제19사단을 함경북도 나남에 배치했으며, 제19사단 산하 제37여단을 함흥에 , 제39여단을 평양에 주둔시켰다고 합니다. 이들 병력수는 23,000명에 달했으며 최신 무장을 한 일본 정예부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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