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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의사 기념관에서 만난 박열과 가네코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8. 2. 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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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경을 갔을때 박열의사 기념관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있었다. 생소한 이름이었다. 문경에 대해서 알기 전까지 박열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몰랐고 가네코는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다룬 책을 한권 읽고 나니 그에 대해 궁금해졌고 그를 사랑했다는 가네코도 궁금해졌다. 




박열이 궁금해서 가본 박열 의사기념관에서는 박열이 생각했던 인생관을 새롭게 접해볼 수 있어서 좋다. 박열이 말한 강자의 선언은 과연 무엇인가. "장대같은 빗방울이 돌을 부수고 또 깨뜨리듯 자유의 전사는 죽고 또 죽인다. 새 봄의 기운이 온 사방에 가득하듯 제국이 폭팔하는 때가 곧 당도할 것이다. 조국 동포여 싸우고 도 싸워라! 앞으로 또 앞으로 약진하라!



박열의사 기념관은 1,2층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1층에서는 주로 문서등으로 박열과 가네코에 대해서 접해볼 수 있따. 



해설사의 설명이 있어도 좋지만 해설사의 설명이 있을 경우 주체적으로 생각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될수도 있기에 주로 내가 보고 해석하고 생각하는 편이다.




시대가 변화하고 격변하는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약진하기도 하지만 그 흐름에 자신을 묻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박열은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맞섰던 사람중 하나다. 


마성면 오천리 지역은 1905년부터 학교를 만들고 1919년에는 권농회를 설립하는 등 타지역과 달리 선구적인 농민 자족자조운동이 일어났던 지역이라고 한다. 박열 의사의 큰 형인 박정식이 일찍이 이곳에 이주하여 활동하였다고 한다.



가네코 역시 주체적인 여성으로 박열의사만큼이나 많은 자신의 글을 남겼던 사람이기도 하다.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서 당시 재판과정을 재현한 것도 볼 수 있는 것도 박열의사기념관을 찾아온 보람이기도 하다. 




감옥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박열의사의 흔적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 



박열의 동반자였던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수기를 보면 일본인이기느느 하지만 일본인이 너무 증오스러워 화가 치밀곤 했다고 한다. 






"나는 사고하고 행동한다. 온몸을 바쳐서 독립운동의 일꾼으로서 한 병졸로서 일한다. 나의 사상과 행동은 언제나 올바르고 보다 정의로운 것을 지표로 한다." - 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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