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바로 생매장이라는 단어입니다. 고대국가의 흔적이라면서 우리는 순장풍습을 그냥 과거의 이야기려니 하고 지나가곤 하는데요. 그 순장에 대해 자세히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고령 대가야왕릉 전시관에 있었습니다.
대가야왕릉 전시관은 지산동 고분군중 한 곳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그들의 삶과 순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추정하는 대로 기록이 남아 있고 그걸로 판단하는 가운데 고대사에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중 하나가 바로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을 함께 매장이라는 끔찍하고 잔인한 풍습이죠.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0여기의 왕릉급 대형고분이 발굴조사 되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도굴되어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지산동 고분군의 기록으로 보는 순장으로 순장이 무엇인지 다시 배워 봅니다.
순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무덤들은 고령 말고도 부여등에 있는데요. 발굴된 유물들을 모두 걷어내자 가장 낮은 자리에서 상당수의 인골이 나왔다고 합니다.
순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한 무덤에 묻힌 사람들의 신분 차이뿐 아니라 이들이 한꺼번에 묻혔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합천 옥전 고분군이나 부산 복천동 고분군, 황남대총에서도 순장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순장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대부분 3~6세기 사이의 무덤으로 당시 한반도에서는 순장이라는 장례 풍습이 유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중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순장의 유형은 다른 곳과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덤 안에는 뚜껑돌이 덮인 크고 작은 석실들이 많이 있는데 서쪽 석실 내부는 토기와 유물이 가득 차 있고 그 사이에 인골이 있는데 무덤 한 가운데 만든 곳이 주인공이 묻힌 주실입니다.
저도 궁금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한 사람을 순장하든 수십명을 순장하든 간에 산 사람을 무덤에 묻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을텐데요. 어떻게 무덤에 집어 넣을 수 있었을까요.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으로 가보면 중국에서 순장이 성행한 시기는 바로 2천5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순장자의 인골에서 다양한 죽음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생매장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살해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많은 유물을 묻고 순장까지 할 정도면 장례의식이 엄청나게 화려했을 겁니다.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은 순장자의 신분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로 화려한 장신구들은 대부분 무덤의 주인공이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별다른 유물 없이 함께 묻힌 사람들은 평민이고 화려한 말 장식을 부장한 순장자는 기마무사, 각종 토기와 무기들을 부장한 순장자는 주인공을 가까이서 보좌하던 호위 무사로 보인다고 합니다.
순장은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적인 것이 아니지만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죽은 뒤에도 살아 있을 때의 생활이 그대로 지속된다는 고대인들의 내세관이 순장이라는 풍습을 남긴거죠.
순장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었을 겁니다. 순장이 폐지된 이후의 한반도의 국가들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았는데 더 성숙하고 다양한 사회로 발전된 것입니다. 순장은 어떻게 보면 더 인간적인 세상으로 가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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