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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성당을 찾아, 일제강점기에 지은 용소막성당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7. 12.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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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막성당은 풍수원성당, 원주 성당에 이어 강원도에 세 번째로 설립된 성당으로 1898년 최석안의 초가집에서 시작된 성당으로 지금의 건물은 1915년에 시잘레신부가 준공하였고, 90년이 넘은 건물이다. 



원주에는 여러번 와보지만 용소막 성당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초입에서 만나는 용소막 성당은 고즈넉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다. 




예전에 살던 터만 남아 있는 이곳은  병인박해 때 멀리 수원 지방에서 피난 온 몇몇 신자 가족들이 강원도 평창 지역에 살다가 박해가 뜸해지자 뿔뿔이 흩어져 그 일부는 용소막에서 멀지 않은 황둔(黃屯)으로 내려와 살았다고 한다. 그곳 신자들의 지도자는 최도철(崔道澈, 바르나바)이었는데 1893년부터 한두 집씩 오미에서 용소막으로 이사 오기 시작하였으며, 1898년에는 최도철도 용소막으로 이사하였다고 한다. 



은 벽돌로 지은 시골 성당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은 벽돌조 구조의 전형적 형태의 성당으로 1986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된 곳이다. 



초대 주임으로는 1903년에 입국한 프와요(V. Poyaud, 表光東) 신부가 임명되었다. 프와요 신부가 부임할 당시 신자수는 864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관할 구역은 원주군, 영월군, 평창군, 제천군, 단양군 등 5개 군에 걸쳐 있었고 후에 용소막 본당은 교세가 1,238명에 달하는 큰 본당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교세가 확장되던 용소막성당은 1965년 3월 원주교구가 춘천교구에서 분리 · 신설됨에 따라 용소막 본당은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로 이관되었으며 관할 지역의 분할과 주민들의 도시 진출 현상으로 말미암아 교세가 크게 감소되었다고 한다. 



마루와 창틀을 보수하는 등 본당의 시설물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마친 것은 31대 주임으로 부임한 남궁민(南宮玟) 루카 신부로 피정 센터인 두루의 집을 보수(1, 2층) · 증축하여(3층) 축복식을 거행할 뿐만 아니라 성당의 전기 시설을 수리하였다고 한다. 








용소막 성당이 있는 공간에는 1988년 11월에는 용소막 출신 사제로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하였고, 성서 번역에 힘썼던 선종완 신부의 공적을 기리는 유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유물관 안에는 한글과 영어는 물론 라틴어 성경에 독일과 이탈리아, 러시아등 여러 나라의 성경들이 전시되어 있고,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보낸 선종완 신부가 공동번역을 할때 쓰던 책상 일조와 수십 권으로 묶은 성경 번역의 초고등 생전에 쓰던 유물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 천주교에서 읽는 성서는 모두 한국어로 되어 있는데 원래 예전에는 라틴어로만 읽을 수 있었다. 히브리어와 희랍어 그리고 예루살렘의 지형까지 모두 알아야 구약성서를 번역할 수 있었던 그때 선종완 신부의 노력이 큰 빛을 발했다고 한다. 



원주에서는 2017 원주시티투어버스를 운행하고 있는데  '고품격 레저아트' 코스에는 고판화박물관, 성황림, 용소막 성당을 가는 '특별한 사색길', 충효사, 흥원창, 법천사지, 거돈사지, 임경업장군추모비를 거쳐가는데 코스에는 용소막성당도 있다. 


용소막성당 :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산로 1857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106호 (1986.05.23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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