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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평촌동에 있는 류혁연의 묘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7. 1.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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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새롭게 만들어진 도시로 그 역사가 100년을 조금 넘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충청남도의 다른 지역처럼 역사적인 인물의 흔적이나 유적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죠. 그래도 살펴보면 구석구석에 의외의 흔적들이 몇 군데 있더군요.  



대전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지역인 서구 평촌동 산 18에 가면 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된 류혁연의 묘와 신도비가 있습니다. 지금의 해군사령관에 해당하는 삼도수군통제사는 이순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각인이 되어 있는데요. 조선후기의 무신인 야당 류혁연도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했던 인물입니다. 


이 비는 평촌동 류혁연 신도비입니다. 


대전관역시 문화재돌봄사업단에서 관리하는 이곳은 NFC로 다양한 정보를 직접 접해볼 수 있습니다. 


조금더 위로 올라가면 류혁연의 묘소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저도 대전에 산지는 정말 오래되었는데 류혁연의 묘는 처음 가보는 것 같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잘 묻혀 있는 류혁연은 서산에서 태어나 1644년(인조 22)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무신으로서 전략이나 군사행정에서 뛰어난 재능을 그는 사후에 영의정 벼슬에 재수되었으며 숙종 17년 이곳에 이장되었습니다. 



류장군 의조부인 류형(柳珩) 장군은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명랑해전 에서 공을 세웠으며 아버지는 이괄의난을 진압한 류효걸(柳孝傑)이었다. 무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류장군은 이완장군과 함께 효종이 추진했던 북벌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지만 경신환국(숙종 1680) 때 남인과 서인 간의 정쟁에 휩쓸려 제주도 대정(大靜)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가족들은 시신을 도성 인근의 광진(廣津)나루에 가매장[藁葬]했다가 기사환국(1691)으로 신원되자 현재의 자리에 이장된 것이다. 


경남 통영 세병관(洗兵舘)에 가면 역대 삼도수군통제사의 명단이 걸려 있는데 그중에 류혁연의 이름도 들어 있다.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근거없이 뒤집어 씌우는 죄를‘막수유죄’라 하였는데 류혁연의 죽음도 그와 유사하다. 


최후의 순간에서도 가족들에게 원망을 버리고 자신이 못다한 충성을 다하라는 유훈을 남겼던 류혁연의 묘가 이곳에 있다. 


묘소를 뒤로 하고 본 묘지의 풍수는 눈앞에 펼쳐진 안산(案山)과조산(朝山)은 수려하게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서흘러들어오는 평촌천이 혈 뒤를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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