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대부분 아주 오래전에 만들었을것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 그런데 비교적 근대시기에 만들어진 향교가 보령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근대/개항기인 1901년에 만들어진 오천향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마지막 향교이다. 처음도 의미있지만 마지막이라는 타이틀도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향교중에 오천향교가 가장 규모도 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도 드물듯 하다. 1901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된 오천향교는 시대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오천향교의 규모만큼이나 이곳에 있는 필사본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청금록과 서재유안 정도가 유일하고 의미있는 소장전적이 될 듯 하다.
안쪽으로 들어오면 오천향교의 소박한 모습이 드러난다. 오천향교라는 설명이 없다면 이곳은 그냥 일반 가문의 사당정도라고 생각하고 지나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오천향교를 찾아가는 길은 충남 보령시 오천면 향교길 45-26을 입력하면 된다.
오천향교는 1895년 오천의 충청수군절도사영이 폐영되고 1901년 오천군이 생기면서 고을에 향교를 건립하기 위해 유림과 군수가 힘을 합쳤다고 한다. 그러나 향교로서 역활은 거의 하지 못한채 오천향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향교로만 기억되고 있다.
주소를 자세히 살펴보고 기억해본다. 오천향교 대성전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천향교가 교육적인 기능은 거의 없다고 보는것은 외삼문이나 내삼문이 따로 없고 들어오자 마자 바로 대성전이 위치해 있다는 것 때문이다. 보통 향교는 명륜당이 교육기능을 하고 그곳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머무르를 수 있는 숙소인 동재나 서재가 필요하다.
그냥 제사를 지내는 기능만 남아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게 해준다. 향교 대성전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5성과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린다.
그나마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정면에 보이는 건물정도인듯 하다.
대성전 뒤로 돌아와보니 이곳에서는 머무른다던가 다른 용도로 쓰인적이 없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령에는 향교가 세곳이 있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남포읍성의 지근거리에 있는 남포향교, 보령성곽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보령향교, 주변이 논밭으로 둘러쌓인 곳에 있는 이곳 오천향교이다. 오천향교는 다른 향교보다 훨신 규모도 작고 볼품없어보이지만 조선시대 마지막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했던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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