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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달에 앞서 찾은 김좌진장군의 묘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6. 5. 1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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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인 백야 김좌진은 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는데요.  개화사상이 있던 김좌진 장군은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재산을 청산한 적이 있기로 유명합니다. 한일합방이 되기전인 1905년 호명학교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김좌진장군의 묘소로 가는길에는 독립운동가인 류즌근 열사 묘역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2km쯤 들어가면 김좌진 장굼의 묘가 나오는데 그곳 근처에는 광성부원군(김극성)사우도 있네요. 



주차장도 넉넉하고 주변의 풍광도 확 뚫려 있어서 좋네요. 이곳은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산51로 원래는 오숙근 여사가 1933년에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안장하였으나 1958년 부인이 타계하자 김두한이 이곳에 합장하였다고 합니다. 



휴일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김좌진 장군하면 시가 먼저 생각납니다.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찬서리가 고국생각을 돌구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단장의 아픈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김좌진 장군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안내판도 있네요. 김좌진 장군은 1930년 1월 24일 북만주 해림의 산시역 부근에서 총을 맞고 쓰려졌습니다. 



좌진 장군의 일생과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의견이 많은데요.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우리의 민족정체성을 지켜준 ‘민족 영웅’인 것은 사실입니다. 



묘역으로 올라가봅니다. 




이곳은 제사를 지낼때 사용하는 물품을보관하는 보관소인 백치제입니다. 





김좌진 장군 묘역 앞에는 상석과 장명등이 세워져 있으며 아래부분에 둘레석을 둘렀습니다. 뒷편에는 담당이 설치되어 있고 사진에서 보다시피 마석상 한쌍이 세워져 있습니다. 



김좌진은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군무총장과 국무위원에 임명되기도 했지만 모두 사양하고 만주의 동포들을 묶는 일에만 열중했는데요. 그는 이윽고 한족연합회(韓族聯合會)를 조직해 그 주석에 취임하면서 동포의 자치운동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지도자는 불과 42살의 나이에 옛 부하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망명지에서 비극적 종말을 마친 그의 여정은 먼 이국땅에서 끝이 났지만 다행히도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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