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부산유괴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극비수사는 소신을 말하고 있는 영화다. 공권력을 대변하는 경찰의 문제는 그 시대에 더욱 그랬고 지금역시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다. 1차 사건에서 아이를 구한 사람은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가 그주인공이지만 당시 비공개 수사였던 만큼 그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고 한다.
극비수사라는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소신과 명예 그리고 뇌물을 보는 시각차이다.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쓴다던가 조사를 받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디 삶이 마음대로 되던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간에 경찰과 대면하는일 생길수가 있다. 사람이 죽던가 심각한 피해를 당하지 않는 이상 경찰의 태도가 대부분 뜨뜻미지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그건 일에 불과하다.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신의 일처럼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처리를 하면서 자신의 과오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매우 소극적으로 처리한다.
일례로 한번 수사해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긴 사건이 잘못되었더라도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뒤집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극비수사에서 공길용 형사가 속해 있는 팀은 아이를 찾는데 신경을 쓰는것보다 그 공이 남에게 넘어갈까 더 안절부절한다. 아이를 찾는 부모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한다.
1. 공길용 형사를 발목잡은 뇌물
영화속에서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공길용 형사의 입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뇌물이다. 아무리 소신이 있더라도 뇌물이 끼게 되면 그 소신은 얼룩져 버린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아이를 잡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치더라도 그가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은 지탄받을만 하다. 지금도 경찰조직은 크고 작은 뇌물문제로 인해 가끔씩 일이 터진다. 뇌물이 일반화되면 될수록 소시민과 자영업자에게 비공식적인 세금의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뇌물이 잘 파고드는 곳은 보통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된 경찰 조직이다. 경찰의 뇌물문제는 그들 내부의 감찰반이 조사하게 되는데 서로 좋은게 좋다고 넘어갈 수도 있다. 검찰이 기소할수도 있겠지만 내부 정보를 아는 것은 쉽지 않고 검찰과 경찰의 묘한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처리할 수도 없다.
경찰같은 공무원들이 소신을 가지려면 가장 먼저 가져아하는 마음가짐은 청렴함이다. 홍콩경찰도 부패가 그토록 심했지만 염정공서라는 조직이 출발하여 경찰조직을 주요 수사대상으로 취급한 뒤 현재 부패인식지수에서 항상 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싱가포르 부패행위조사국의 권한은 막강하다. 180여개국에서 조사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상위 10위안에 싱가포르가 들어가 있고 이보다는 약간 낮지만 홍콩도 한국보다 상당히 높다. 반면 한국은 55위다. 편법을 효율로 착각한다면 뇌물이 만연화되고 실력과 능력이 그대로 인정되고 반영되는 사회일수록 부패가 싹트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2. 공길용의 소신
조직이 크면 클수록 소신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특히 한국과 같은 사회분위기속에서 경찰이 소수의 인권을 대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극비수사에서는 피라미드처럼 튼튼히 조직을 받치고 있는 그곳에서 일이 해결되면 위부터 밑까지 차례로 나누어 먹는 경찰조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의 생사를 위해 선택한 극비수사는 생각만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면초가 상황에 몰리게 된 ‘공길용’과 ‘김중산’의 갈등이 심각해진다. 사람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공길용은 점을 친다는 김중산이 명예를 얻으려고 그런다고 오해하고 김중산은 공길용이 한자리 얻으려는 생각에 아이를 찾는다고 오해한다. 마지막 순간에 사람은 한 판 붙으면서 비로소 모든 것이 아이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3. 김중산의 명예
김중산의 캐릭터를 보면서 가끔 문제가 불거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연상케한다. 김중산은 당시 부모의 간곡한 요청으로 아이의 생사를 점쳤으며 자신이 사주를 보고 뽑은 경찰만이 아이를 살릴 수 있으며, 그 인물이 바로 공길용 형사라고 확신했던 사람이다. 자신의 스승인 백도사와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한국사회에서 교수와 대학원생이나 대학생과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한 두번이 아니다. 자신의 역할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논문에 올리는데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사람도 많다.
70년대 말의 이야기인데 왜 지금도 현재 진행형같다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늦더라도 차근차근 밟아서 올라가기보다는 인맥, 돈맥, 학맥을 이용해 남들보다 빨리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오히려 비리가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언제쯤 소신과 공평, 공감이 평범한 단어가 되는 세상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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