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징비록 임득의장군 이몽학의 난을 제압하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9. 16. 06:30
728x90
반응형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의 주인공은 이몽학이다.

한 무리의 수장으로 민초로 구성된 대공계에게 검술을 가르쳤던 인물이었다. 많은 무리속에서 자신만의 고독한 길을 걸었던 이몽학은 반란군의 수장이었다. 임진왜란으로 혼란을 겪던 시기에 조선땅의 민초들을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충청도 홍산에서 반란을 일으켜 홍주성으로 공격해오던 이몽학을 진압한 것은 홍주목사 홍가신과 이곳에 자리한 임득의 장군이다.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95-1에 묻힌 임득의 장군은 본관은 평택으로 임식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몽학의 난을 제압한 공으로 '청난 3등공신'에 선정되었고 벼슬은 경상우도병마사에 이르렀다.

 

 

임득의 장군 묘 옆에는 그의 영정을 모신 정충사가 있다.

 

 

석축으로 잘 쌓여 있는 저곳이 바로 정충사로 마치 읍성을 연상케 한다.

 

 

정충사는 조선시대의 사당으로 2009년 10월 20일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401호로 지정되었다.

이곳 정충사에서는 매년 음력 9월 19일 임득의 장군을 제향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1612년 (광해 4년)에 예장으로 모셨으며 1647년 (인조25년)에 '승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훈련원사'를 받고 이곳 사당인 정충사를 세워 배향하였다.

 

 

 

매년 임득의 장군 제향일마다 이곳에 천막이 쳐지고 앞 마당에서는 그의 후손들이 모여 식사도 하고 그동안 살던 이야기도 물어보는 곳이다.

 

 

임득의 장군의 묘역이다.

 

 

 

전쟁으로 인해 구심점을 잃어버린 하삼도등은 혼란이 극심화되었을 것이다. 마치 나라가 없어진 것 같았던 그때 이몽학은 자신만의 세상을 꿈꾸었지만 지방에 있었던 임득의 장군은 그의 반란을 제압하였다.

 

임득의 장군은 한양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휴가를 맞아 홍성군 서부면에 있는 부친을 뵈러 와 있는 상태였다. 홍주성이 위급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병 800여명을 이끌어 적의 포위망을 뚫고 홍주성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한다. 함락 바로 직전에 놓여있던 홍주성에서 수성에 성공한 임득의 장군은 한 차례 전투에서 그들의 예봉을 꺽고 이에 이몽학은 부하의 칼에 죽게되면서 난은 평정된다.

 

 

임진왜란 등으로 민심을 잃었던 선조에게는 이몽학의 난은 청천벽력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수천명까지 반란군이 늘어 기세가 꺽이지 않았을 때 전략적으로 중요한 홍주성을 구해낸 임득의 장군이 고마웠을 것이다. 이미 1592년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갈때 선조를 수행했던 인연도 있었던 사람이기에 더욱 믿음이 갔을 듯 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