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쓰시마에서 주둔중이던 1군이 부산에 상륙한 뒤 파죽지세로 조선땅을 유린할 때 승려로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갑사에서 출발한 영규대사가 그 주인공이다. 옥천 출신으로 그쪽에 묻혀 있을줄 알았더니 공주쪽에 있어서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다. 금산에 가면 칠백의총이 있기 때문이다.
영규대사의 묘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5에 위치해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 가장 많은 활약을 보였던 사람은 영규대사를 비롯하여 금강산에서 일어난 사명대사, 묘향산에서 일어난 서산대사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조실부모하여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이후 청련암에서 머리를 깍고 혼자 지내다가 멀리 북쪽에 있는 묘향산의 휴정대사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수행을 하던 영규대사는 나라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휴정대사의 말에 따라 계룡산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득고 전란은 한반도를 감싸고 이에 영규대사는 창을 들고 일어섰다. 금새 500여명의 스님들을 모으고 청주로 향하게 된다. 조헌의병장과 합세한 영규승병장은 최초의 육전 승리라는 청주성 전투를 만들어낸다.
그의 공덕을 기리는 비가 넓은 땅에 우뚝 서있다.
청주성 전투에서 이긴 조헌의병장과 영규 승병장은 기세를 몰아 금산으로 내려갔다. 권율 장군과 합세하기로 했으나 권율장군의 메시지가 전달이 되지 않아 이들만으로 왜군과 전투를 치루게 된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금산에서 전멸을 하게 되고 총을 맞고 갑사에 숨었던 영규대사는 숨을 거두게 된다.
승려의 묘가 이렇게 조성되어 있는 것은 처음으로 보는 듯하다. 대부분 사찰에서 사리같은 형태로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아마도 장수로 싸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공덕을 기려 1738년 (영조 14)에 공주 갑사 경내 표충원을 세워서 그곳에서 영규대사를 모시게 하였다.
영규대사의 묘는 봉분이 잘 조성되어 있다.
올해는 영규대사 순국 423주년이 되는 해이다. 곧 8.15 광복일도 다가오는데 그의 호국사상과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백제가 오랫동안 한국역사에서 외면받아 온것은 나라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역사가 대를 이어 전해지기 위해서는 나라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도 있고 후손에게 물려줄 정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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