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의병장 조헌을 따라나선 노씨 삼형제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9. 18. 06:30
728x90
반응형

의병장 조헌은 알아도 노씨 삼형제를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KBS 드라마 징비록으로 조선의 임진왜란이 다시 재조명되면서 그당시의 상황과 지역의 의병들의 활동이 드러나고 있다.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일어난 승군 영규대사와 호서지방의 옥천에서 일어난 조헌은 힘을 합쳐 청주성으로 향했다. 이때 조헌을 따라 일어난 사람들 중에 만경 노씨 삼형제가 있었다. 혈전에 혈전을 거듭한 끝에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에서의 전투를 치루기 위해 내려왔다가 왜군과의 전투에서 모두 전사하게 된 이야기이다.

 

 

 

삼형제는 모두 중봉 조헌의 문인으로 노응환 (1555~1592), 노응탁 (1560~1592), 노응호 (1574~1592)가 주인공이다. 맏형을 따라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노응탁은 사마시에 합격하고 청주성과 금산전투에서 참전을 했다가 젊은 나이에 순절하고 노응호는 청주성 전투에 참전했다가 다시 돌아와 군량을 가지고 금산에 갔으나 두 형은 이미 전사한 뒤였다. 그 형의 시신을 안치한 뒤 고향에 돌아와 노응호는 같은해에 세상을 죽었다고 한다.

 

 

노응환과 노응탁은 1831년에 정려와 증직을 받았다. 이의 정려각 앞에는 노응환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 강점기시에도 형제가 같이 일제에 대항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이처럼 삼형제가 모두 같은 뜻으로 한 전쟁에 참전한 사례는 많지 않다. 전쟁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한 국가들의 사례는 적지 않다. 일본 황족이나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위대에 복무를 해야 하고 영국의 명문가들도 적지 않은 전쟁에 참전하였다.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에 오면서 양반들은 군복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특권을 이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곳 유적지에는 충의문이 세워져 있다. 노씨 삼의사가 순절한 지 400여 년만인 1978년에 공주의 유지들이 모여 '삼의사 사우건립 추진회'를 결성하여 생가지에 사당을 짓고 삼의사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삼의사의 정면 우측에 세워진 이 노응호의 정려는 후손이 살던 반촌리에 세워졌떤 것을 1982년 삼의사를 건립 단장하면서 이곳에 옮겨진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