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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 한원진의 영정을 모신 양곡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9.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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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 한원진은 다른 유학자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네비게이션에서 양곡사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고 국내 포탈사이트에서도 나오지 않은 한원진선생 사당은 직접 찾아가야 볼 수 있다. 한 번쯤 찾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 흥남서로 131-31을 검색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다.

 

 

 

이곳 양곡사는 조선 후기 유학자인 남당 한원진 (1682 ~ 1751)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으로 1772년 (영조 48)에 호서지방의 유생들이 양곡연건소를 세우고 이듬해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된 이후 관리가 잘 안되고 있다가 1985 ~ 1987년에 양곡사를 신축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남당 한원진은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상경의 후손으로 성리학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암 이간 마을의 주인공 이간과 인물성동이논쟁으로 조선 후기 성리학자들 간에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았다.

 

 

 

남당 한원진이 이곳에 있지만 대전시에서는 남당 한원진을 모신 행사를 올해 진행한 적이 있다.

대전역사박물관 개관 2주년을 맞아 ‘호서명현 초상화-유학자, 관복을 벗다’ 특별전으로 심의복건 전신상과 반신상의 남당 한원진 초상화 2점을 비롯해 영정함, 심의(정자관, 유건 포함), 남당 초상을 보고 쓴 병계 윤봉구의 화상찬 등 총 7점을 이번 특별전에 선보인 적이 있다.

 

이날 방문했을 때 관리하시는 분이 잡초제거를 위해 약을 치고 있었다. 양곡사라는 현판이 눈에 띈다. 남당 한원진의 학문과 사상은 한말 위정척사파에 커다란 영향을 주면서 홍주의병을 비롯한 항일의병운동의 사상적 근원이 되었으며, 한말 의병장 지산 김복한과 복암 이설을 비롯해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등 홍성 출신의 수많은 독립운동을 하는 사상적 뿌리가 되었다.

 

 

관리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모든 시설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인듯 하다.

사람이 잘 찾지 않는다는 것은 가서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다.

 

 

남당 한원진은 어떤 인생을 살았던 것일까. 역사 기록으로 보면 율곡 이이,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 수암 권상하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성리학을 계승 발전시켰고 외암 이간과 호락논쟁을 이끌었으며 후대에는 항일운동의 정신적인 기반이 되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남당 한원진은 불과 몇년전부터 재조명되고 있는 듯하다. 그냥  지역의 한 유학자로만 알려졌던 한원진이 홍수성역사관등을 통해 재조명되면서 조금씩 그 흔적이 재구성되고 있다.

 

 

유교를 정신적인 기반으로 생각했던 조선과 오랑캐인 일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주장했던 한원진은 1751년에 타계하였으며, 그의 시신은 충남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 174에 안장되었다.  호락논쟁은 인간과 동물 혹은 식물의 본성이 같다고 주장하는 인물성동론과 근본적으로 서로의 본성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성이론으로 나뉘는데 인물성동론의 대표 주자는 이간이고, 인물성이론의 대표 주자는 한원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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