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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황후가 세웠다는 하치만궁신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8.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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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황후는 일본 역사에서 의미가 있는 사람이다.

신공왕후가 돌아오던 해에 기사카의 이즈야마 기슭에 여덟류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는 곳이 바로 이곳 하치만궁신사이다. AD.200년 신공왕후의 신라정토설은 일본학자들도 틀렸다고 인정하였다고 한다.

 

 

 

하치만궁 신사의 입구에 서있는 토리이(鳥居)는 신성한 공간과 평범한 공간의 경계를 나타낸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반도의 오래전부터 내려온 솟대의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한국의 대부분 솟대가 기둥하나에 새가 앉아 있는 형태라면 일본의 토리이는 솟대를 두개 세우고 조금더 하늘을 안정적으로 받들고 있는 형국이다.

 

추운땅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에는 솟대문화가 있다. 우리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바로 장대 위의 새와 연결이 된다. 샤먼이 죽으면 새가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새를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 새는 집과 마을을 지켜주며 망자의 영혼이기도 하다. 때로는 새를 조상신으로 섬기기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로 활약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가 죽으면서 그의 딸이자 19대 대마도주의 아내인 고니시 마리아는 버림을 받게 된다. 그녀를 위한 위령사당이 이곳에 있다.

 

 

 

 

 

이곳에는 보물전이 있는데 굳게 봉하여 개봉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재 도둑놈들이 대마도를 자주 들어온 덕분에 한국 사람 이미지만 안좋아지고 있다.

 

 

 

 

 

 

 

 

 

 

 

 

 

 

 

일본 신사중에서 가장 많은 신사는 바로 8번궁이다.

일본 신사에는 모두 나무가 많다. 특히 강수량이 4,000ml나 되니 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다.

나는 어디를 가던지 여행을 가면 사람이 있을때는 사진을 왠만해선 잘 찍지 않는다. 사진이 기억을 대신해주지 않을뿐더러 그 앞에 사진을 찍고 도장을 찍는것보다 그 지역의 역사를 한번더 생각하는 것을 택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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