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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사랑했던 문학인 니카라이 문학관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8.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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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라는 척박한 섬에서 소설가라던가 문학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인구수도 워낙 적고 생환환경이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걸어가는 니카무라지구 거리는 과거로 회귀하는듯한 느낌의 거리로 옛날 저택의 돌담돌로 되어 있다. 산불이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담으로 쌓았던 것이 지금은 이곳의 특징이 되었다.

 

 

제주도의 돌담길은 자연적으로 쌓은듯한 느낌이 든다면 이곳의 돌담길은 깔끔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이다.

 

좌측에는 니카라이 토스이 탄생지라고 써있는 대리석이 놓여 있다. 아직 영업중이고 기념관이지 생가는 아니다.

 

 

너무 인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정갈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일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니카라이 토스는 1860년 12월 2일 이곳 이즈하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근무지였던 부산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서 한국말을 잘했다고 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니카라이 토스이는 시대물과 현대물을 오가며 다양한 글을 써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니카라이 토스이의 문학관을 보면서 연상되는 사람이 있었다.

옥천에 위치한 정재용 시인의 생가다. 아쉽게도 정재용생가보다 이곳이 훨씬 잘 조성되어 있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니카라이 토스이가 한국사람들에게 더 유명해진 것은 바로 1882년 춘향전을 번역해 아사히 신문에 20회 연재하면서 부터이다. 1882년은 조선에서 먹고 살기 힘든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던 해이다.

 

 

문학관이나 기념관을 만든다면 일본처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규모라기보다 짜임새가 남다르다.

 

나카라이 토스이는 유달리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문학을 사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생가 모형이다.

 

나카라이 요스이의 친구였는데 스모선수였다고 한다.

 

사실 문학가로서 니카라이 토스이보다 그의 제자이며 연인이었던 히구치 이치요가 더 유명하다. 메이지(명치) 시대 최초의 여류소설가로 일본 근대 소설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지금 한국의 50,000원권에 신사임당이 새겨져 있는데 한국보다 11년 먼저 발행된 5,000엔 지폐에 새겨졌다. 20살에 처음 토스이를 만나서 사랑했고 25살에 요절할때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여성 심리를 묘사했다는 매미, 나 때문에나 그녀의 일기였던 치열하게 피는 꽃 이치요, 해질 무렵 무라사키등이 알려졌다.

 

이곳 토스이관은 대마도의 마을조성 커뮤니티 지원교류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목적 공간을 비롯하여 시민 관광객들의 휴식의 장소 및 활동장소로 이용할 수 있다.

 

 

관리가 잘되고 있었는데 이곳은 약 10년전에 NPO법인 쓰시마 고숙이 지정관리자로 지정되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2층에는 다양한 서적과 고서적을 접하고 읽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시간이 있다면 일본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녹차등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겠지만 일정이 있는 관계로..

교토에 가면 게이샤가 따라주는 녹차를 마실 수 있는데 3시간에 20만원정도 한다. 시간이 되시는 분은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토스토이 문학관에서는 기모노를 입어볼 수 있는 체험행사도 한다.

이곳의 주소는 나가사키켄 쓰시마시 이츠하라쵸 나카무라 584

개관시간은 9:00 ~ 22:00

정기휴일은 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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