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영된 '금동불상 도난 미스터리'의 사찰이 부석사인것은 모른채 지난10일쯤 부석사를 방문했었다. 우연히 찾은 서산의 부석사는 풍광이나 지세를 잘 활용한 사찰로 고려말의 불교가 어떠했는지 살짝 엿보게 해준다. 사실 한국에서 부석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사찰은 신라 고승 의상이 창건한 영주 부석사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전형적인 주심포계 건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서산 부석사는 창건기록이 뚜렷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방송에서 언급해서 대중에게 알려진 관세음보살 좌상의 기록은 명확히 남아 있었다. 고려 말기인 1330년에 서산 부석사에 모셔져 있다는 기록이 있었다. 절도단이 그곳에서 관세음보살 좌상을 훔쳐내기 전에도 대마도 관음사에 그 보살상이 있는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바다에 떠있었다는 기록이 있을정도로 이곳 부석사는 바다와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지금은 논으로 보이는 곳이 모두 갯벌이었다고 하니 일본인들이 자주 이곳에 왔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비산부석사라는 일주문을 지나간다.
서산 부석사는 조선시대에는 무학스님이 중창하고 만공 대선사가 이 도량에 머물며 수행정진하였던 곳이다.
불교는 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에 이르러 화려한 꽃을 피운다. 광종때에는 국사.왕사제도를 시행할정도로 불교의 권위가 최고조에 이른다.
677년 신라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극락전'의 상량기와 의상스님과 선묘낭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사찰이다.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4년인 650년에 복흥사라는 절에 의상이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의상은 공부를 위해 당나라 지장사의 아랫마을에 젊고 예쁜 선묘낭자가 살고 있었다. 이 낭자는 의상에게 반했는데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신라로 떠나자 선묘낭자는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뒤에 용이 되어 의상을 따라 나왔다고 한다.
의상은 자신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선묘낭자를 위해 절을 세웠는데 그 절이 바로 이곳 도비산 부석사라고 전해지고 있다.
돌계단 양쪽으로 하얗게 피어난 꽃이 소박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든다.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부석사의 종무소이다. 좌측으로는 부석사의 중심법당인 극락전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부석사 중심법당 극락전 아래에 위치한 안양루로 극락전이 부처님의 집이라면 안양루는 극락세계 대중들이 머무는 곳으로 이곳에서도 법회를 열기도 한다.
부석사 일원은 도비산 강무지로 알려져 있는데 강무지는 임금이 직접 참여하여 군사훈련을 한 곳으로 조선 태종이 충령대군을 데리고 이곳에서 사냥물이를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곳을 강무지로 선택한 것은 이곳 일대에 왜구의 침입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때 부석사에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일본으로 흘러갔다고 추측만 하고 있다.
용이 조각되어 있는 이 건물은 금종각이다.
사찰의 뒤로 걸어올라가면 자연암반에 조성되어 있는 마애여래석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축으로 만들어져 있는곳에 자리한 것은 산신각이다.
산신각의 중앙에는 산신, 우측에는 선묘낭자, 좌측에는 용왕을 모시고 있다.
이 바위는 거북바위라고 하는데 잘 살펴보면 거북이를 닮은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동전들이 각기 사람들의 소원을 품고 거북바위에 매달려 있다.
크기는 크지 않은 금동여래좌상이지만 본존불이라고 보고 있다.
남섬부주 고려국 서산 부석사 당주 관음주성결연문
"부처님 말씀에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 없다고 하셨으나 이 말씀에 따라 함께 큰 서원을 세워 관음존상을 주조하여 부석사에 봉안하고 영원토록 봉안, 공양하고자 서원합니다. 이로써 현세에는 재앙을 소멸하고 복 받도록 할 것이며, 후세에는 모두 극락에 왕생하기를 서원합니다. 충숙왕 17년 1298년 2월에 쓰다"
원래 부석사는 조그만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조계종 제7교구 덕숭총림 수덕사의 말사이다. 화려하고 잘 알려진 영주 부석사와 달리 서산 부석사는 소박하고 자연스럽다.
멀리 보이는 저 논이 모두 바다였다니 세월의 시간이 무상하기만 하다. 잘 알려진 해미읍성의 축성의 큰 역사는 바로 이곳에서 강무기간에 결정하였다고 한다.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절도사영성을 해미로 옯기는 구상을 하며 1417년 충청지역 방어를 위한 축성을 시작한다.
여느 사찰이고 전설이 없겠냐만은 사랑이야기가 얽혀 있어서 그런지 더욱 마음이 간다.
만공선사가 이곳에서 오랜시간 수행정진을 했다는 생각을 해보니 조금 안락하게 느껴지는 만공토굴이다.
시간이 되시는 분은 저곳에서 템플스테이를 해볼 수 있다. 서산 부석사는 2004년에 템플스테이로 지정이 되었는데 산사음악회를 비롯하여 향, 맛, 마음으로 마시는차를 맛볼 수 있다. 특히 템플스테이에서만 경험해볼 수 있는 발아공양(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자연에 빚지지 않는 태도를 배우는)이 좋다.
오래된 누각으로 지형을 이용해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대마도 관음사와 서산 부석사와의 금동관음보살좌상반환 사태는 조금더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불상의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발원문은 분명한 사실로 보여진다. 때문에 서산 부석사 측은 이 정황을 근거로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서는 안된다'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문제는 그 불상을 취득하는 것이 적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과거에 불법적으로 약탈되었을것이라는 추정에 근거에 절도를 인정해버린다면 이 다음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과거의 감정을 내세워서 감정적으로 대처하는것은 외교에 도움이 될 것이 전혀 없다.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불법을 불법으로 해결하는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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