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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 선생과 우암 송시열의 흔적 수심대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6.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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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는 조헌선생이 전사한 흔적 칠백의총이 있는 역사흔적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수심대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의 발길은 생각보다 적은 편이다. 수심대라는 곳은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 252에 위치한 곳으로 중봉 조헌선생이 짓고 우암 송시열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심대라는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어 그 이름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조헌 선생은 임진왜란때 봉기하기 전에는 옥천군 안읍 밤티에서 생활하였다가 자주 이 지역에 왕래하면서 후손들에게 이 곳에서 살 것을 분부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뒷편에는 중봉 선생의 위패를 모신 조헌 사당이 있다.

 

 

이곳이 수심대라는 것을 알리는 것은 이 비석과 안내판뿐이었다.

 

 

 

큰 바위가 있고 소나무가 어우러진 자연의 경관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내의 양쪽에 마을이 3개로 나뉘어져 마음심 자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

 

 

금산 여행할때 중봉 조헌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도 추천할만 하다. 금산 수심대를 거쳐 진악산에 위치한 보석사를 한번 둘러보고 칠백의총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2~3시간 일정으로 딱이다.

 

 

칠백의총에서도 중봉 조헌선생의 흔적을 만날 수 있지만 이곳 조헌사당(표충사)에서도 선생을 모신 부조사우가 있다. 부조사우란 나라에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영구히 모시도록 조정에서 지정한 사우이다.

 

 

중봉 조헌 선생을 모신 저 사우는 처음에 1734년 (영조 10년) 곡남리 진동산에 창건되었으나 오랜 시간이 흘러 건물이 허물어지면서, 유림과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운 것이다.  조정에 나아갔을 때도 왕의 행동이 바르지 않으면 직언을 하다 파면되기도 했던 중봉 조헌 선생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곽재우, 정인홍, 고경명등과 함께 호서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인물이다. 청주성 전투에서 최초의 육전 승리를 이끌기도 했지만 금산으로 가서 승병장 영규와 함께 장렬히 전사한다.

 

 

이곳으로 건너오는 다리에는 수심대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수심대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심대교 위에는 조선을 상징하는 건물이 돌로 만들어져 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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