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스릴러)

더 퍼지, 미국을 적당히 비틀어 표현한 영화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4.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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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정해서 그날은 모든 행동이 용서된다는 설정을 다룬 영화 더퍼지,

이 영화에서 차용된 컨셉은 이미 진화론적 관점에서 19세기에 논의된바가 있다. 경쟁력이 없는 인간은 도태되고 질병, 기아등에 의해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지만 그런 주장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생각해보면 이기적이면서 자기모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공평하지 않고 같은 기회도 줄 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일명 그들은 선택된 자들이고 다른 인종 혹은 잉여인간들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365일중 단 하루인 숙청의 날은 없는 자들에게는 지옥같은 날이다.

대부분 못사는 사람이나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을 마음껏 사냥하고 백인중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도 죽일 수 있다. 그 시간동안은 모든 구급차와 경찰은 그 역할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날이지만 그 날을 정해졌기에 위대한 미국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는 같잖은 논리를 내세운다.


 

 

영화속에서 제임스 샌딘은 화목해보이는 가정을 꾸리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다.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방세를 내지 못해 삶을 걱정해야 했지만 숙청의 날이 생겨난 덕분에 그의 인생은 180도로 바뀌었다. 기존에는 없었던 보안시장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CCTV같은정도가 아니라 집을 완전 요새화할 수 있는 그런 시설이 필요해졌다. 특히 돈좀 있다는 백인들이 사는 마을에 그가 파는 시스템이 모두 도입이 되면서 생활은 아주 넉넉해졌다. 덕분에 이웃주민중 일부는 그에게 원한을 가지지만 겉으로는 웃고 있다. 숙청의 날을 기다리며... 

전형적인 백인우월주의에 총기가 자유화된 미국의 어두운 이면을 교묘히 비틀어 표현한다. 일부 일베(?)에 가까운 이들은 미국의 예를 들면서 경찰의 대응을 논하곤 하는데 글쎄 총기가 자유화된 국가와 한국을 단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공권력의 중립성이 비교적 잘 유지되는 미국과 가끔은 누굴 위해 존재하는지 모를때가 있는 한국의 공권력은 믿음과 신뢰에 큰 차이를 보인다.

 

오지랖 넓은 막내아들 찰리는 거리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던 흑인을 안으로 들어오게 해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이를 사랑하는 헨리는 제임스가 반대하자 숙청의 날에 그를 죽이려고 마음먹는다. 조이는 자칭 남친이라는 헨리가 아버지를 향해 총을 쏘리라 생각지도 못하였지만 갑자기 들어온 흑인과 헨리의 돌발행동은 샌딘 가족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 흑인을 쫓아온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보안이 잘되었다는 샌딘 집으로 쳐들어온다. 생각보다 보안은 좋지 못한듯 하다. 철문은 견인차에 의해 한번에 뜯겨져 나가게 된다. 흑인만 내놓으면 살려준다고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으니..게다가 가족의 안위보다 목숨경시에 대한 양심이 우선하면서 이들은 들어온 백인들과 일전을 벌인다.


극대화된 폭력성 그리고 우연히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인간이 살아가는것이 수학공식처럼 딱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화를 가져다주고 경제위기를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숙청의 날..돈이 우선시 되는 이 사회에서 목숨을 경시하는 일은 흔히 벌어지고 있다. 사람 목숨이 소중하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이야기고 모든 것은 돈으로 계산된다. 보험사에서 보장해준다는 돈만 보아도 그건 어렵지 않게 접해볼 수 있다. 돈을 많이 준다는 1급 장애가 어느정도 수준인지 아는가? 그건..인간으로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수준이다.

 

나름 설정도 괜찮았으나. 가장 위험한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교훈을 남긴 영화..인간의 폭력성, 돈에 대한 탐욕, 이시대의 인간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될리는 없겠지만 저 논리대로라면 한국에서 생활보호대상자, 차상위계층, 돈없는 노인들..숙청의 날때 한번에 청소할 수 있다. 그러면 복지비는 줄어들테니 젊은 사람들의 부담도 덜어진다고 선동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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