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체험단 및 삶이야기/역사다시 읽기

충남에서 만난 조선역사상 유명했던 인물 한명회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2. 25. 06:30
728x90
반응형

청주 한씨로 알려져있는 한명회의 신도비가 충남 천안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신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 석자만으로도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을만큼 그에 대한 이야기는 후세에 가장 많이 남겨져 있는 인물중 하나이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3길 62'에 가면 한명회선생 신도비를 비롯하여 압구정 한명회의 묘가 그곳에 있다.

 

한명회선생 신도비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명회의 자는 자준이며 호는 압구정, 시호는 충성이다. 태종 15년(1415)에 태어나 성종 18년(1487)까지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막강한 권세를 누려본 인물이다. 인생의 후반부에 화려한 꽃을 보면서 살았지만 한명회는 인생의 중반까지는 과거에 실패하면서 우울한 시절을 보냈다. 문종 2년 (1452) 38세의 나이에 경덕궁의 문지기로 살아가다 친구인 권람의 주선으로 수양대군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충남 천안의 한구석에 이렇게 그를 모신 사당이 있다. 수양대군과 만나고 나서 불과 1년 후인 단종 1년 (1453) 계유정난때 참모로 세운 공을 인정받아 군기녹사, 사복시소윤, 동부승지, 좌익공신 1등으로 우승지까지 올라간다. 승승가도를 달리던 한명회는 3년 후 세조 2년 (1456)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을 저지하면서 지금의 비서실장인 도승지로 승진 1년후인 1457년 이조판서로 상당군에 봉해졌으며 이어 병조판서에까지 오른다.

 

 

비석에 씌여져 있는 것처럼 막강세도를 달리던 한명회는 1461년 마침내 상당부원군에 진봉되고, 1462년 우의정, 1463년 좌의정, 1466년에는 영의정이 되었다.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단종복위운동을 저지한지 10년만인 1466년 이시애의 난에 연류되어 심문을 당하면서 잠시 어두운 시절을 보낸다.  

 

 

한명회를 상징하는 상당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사당에는 상당문이라고 현판이 걸려져 있다. 세조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남이의 옥사를 다스리면서 다시금 익대공신 1등에 책록되고 예종 1년(1469)에는 다시 영의정에 복직이 된다. 지금 경기도의 양주가 모두 상당군의 토지라고 할만큼 거대한 부를 누렸으며 지금 서울의 지명인 압구정도 한명회가 만든 정사에서 따온 것이다.

 

 

사당안의 모습이다. 한명회를 이야기할때 빠지지 않은 사람은 바로 인수대비이다. 한확의 여섯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수양대군의 아들 도원군과 혼인하였지만 도원군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왕비가 되지 못했다. 그녀의 정치권력에 대한 집념은 한명회와의 정치적인 결탁으로 결국 이루어지게 된다. 왕비를 지내본적이 없이 대비가 되어 막강한 정치권력을 행사한다. 한명회와는 정치적으로 동지였으며 때로는 정적이였던 인수대비는 한명회의 인생에서 절대 빠질수 없는 사람이다.  

 

 

이곳은 한명회선생의 사당인 충모사이다. 수양대군의 정적이였으며 반드시 제거되었어야 되었던 인물 김종서 장군의 사당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의 기세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 대단했던 인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금 걸어올라가면 한명회 선생의 신도비를 만날 수 있다.

돌계단도 있고 공간도 있어서 제사도 지낼 수 있을 듯 하다.

 

이런 신도비는 조선시대 2품 이상 관직을 한 사람에 한하여 무덤에 들어가는 입구에 세운 비를 말한다.

 

 

한명회의 신도비의 비몸과 이무기가 새겨진 덮개돌은 대리석으로 ㄴ만들어져 있고 비의 받침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비의 밤침에는 인상이 새겨져 있고, 덮개 돌에는 두 마리의 이무기를 돋을새김 하였는데 조각수법이 우수하다. 비문은 서거정이 지었다.

 

이곳이 한명회의 묘이다. 성종 이후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 당했지만 다시 신원되었다.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는데 기여를 하였고 조선시대에 1등공신을 네번이나 받았던 인물이며 장순왕후와 공혜왕후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한명회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의 삶을 꼽으라면 한명회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인생에는 인수대비가 있었으며 단종, 세조, 성종, 폐비 윤씨, 연산군이 연결되어 있다. 이보다 더 다이나믹하고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 또 있었을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