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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의 인물 맹사성 아산에 잠들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2.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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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의 인물이면서 고려말의 충신이었던 최영의 손녀사위였던 맹사성은 청렴하기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맹사성의 고택은 현재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위치해 있는데 고려 우왕 12년 문과에 급제해 벼설을 하기 시작했다. 태종초에 이조참의등을 거쳐 세종때에는 우의정, 좌의정을 지내다가 1435년 관직에서 물러나 청렴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혀진다. 청백했으며 관직이 낮은 사람이라도 예로 잘 접대해 이름이 높았던 인물 맹사성은 온양에 내려가 초야에 묻혀 살때 신임 사또가 부임하면 그에게 인사를 가는 것이 일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 일화로 신임 사또가 부임해왔는데 사또의 인사를 뒤로 하고 밭에서 열심히 일을 하기만 했다. 사또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같이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데 날이 저물고 하는 말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뙤약볕에서 일을 해보았으니 백성들의 노고가 어느정도인지 아셨을 것이라며 백성들의 땀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청렴함하면 맹사성이 생각날 정도로 그의 이미지는 좋게 각인되어 있다. 고향인 온양에 내려갔다가 상격하던 도중에 과거를 준비중인 선비를 만나게 되는데 외모로만 평가했던 선비는 맹사성이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한양에는 무엇하러 가는 公?" "과거시험 보려고 갑니 堂" "내가 뽑아 줄 公?" "농담하지 맙시 堂" 선비는 촌노인네가 과거시험이 뭔줄이나 알겠냐는 듯이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과거 시험을 치루고 난 뒤에 면접관 맹사성앞에 선비는 서게 되었다. "어떻게 되었는 公?" 선비는맹사성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후 선비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 堂"

 

최근에 아들러의 심리학에 심취해 있는데 맹사성은 벌써 수백년전에 그와 같은 평등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여진다.

 

 

장년의 맹사성은 현명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처음 벼슬길에 나가섰을때는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자만심이 넘쳤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고불 맹사성은 노년에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검은 소를 이뻐했다고 한다. 이후로 검은 소를 타고 다녔는데 맹사성이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사을을 먹지 않고 울부짖다가 죽었다고 한다. 검은소의 무덤은 지금까지 흑기총이라고 명명되어 보존되고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소. 비록 내 벼슬이 정승이지만 만백성이 내 벗이 아니겠소, 그러니 사죄니 하는 말은 하지 말고 앞으로도 자주 함께 낚시를 즐깁시다" 라는 말을 남겼던 맹사성의 이름을 생각해보면 정성스러움을 생각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맹고불이라고도 불렸던 맹사성은 오래된 부처이며 시대를 앞서간 평등을 생각했던 인물이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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