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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서 태어난 정순왕후의 정치적 삶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2.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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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조선의 왕후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영화 역린과 드라마인 비밀의 문으로 인해 다시 한번 정순왕후가 주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조선 백성들의 관점이나 정조, 사도세자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정순왕후는 정적이며 자신의 가문을 대표했던 기득권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다. 서산에서 태어나 궁으로 들어오기까지 그곳에서 자라났다. 정조 사후에 순조의 수렴청정을 했는데 남인들과 노론 시파를 공격하는 노론 벽파의 배후세력으로 큰 역할을 했다. 여군을 자처하면서 당당한 정치권력을 휘둘렀던 인물 정순왕후는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 간에 정치 태풍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1745년 11월 10일 정순 왕후 김씨는 서산에서 태어나 15년간을 살다 1759년 6월에 영조와 혼인하여 중전에 오르게 된다. 이때의 영조의 나이는 예순 여섯이였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갈때 정순왕후의 집안인 경주 김씨와 혜경궁 홍씨의 집안인 풍산 홍씨는 서로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권력을 중심으로 이들간의 치열한 다툼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풍양 홍씨와 경주 김씨는 실각하게 된다. 정조의 치세때 숨죽이며 기회를 엿보던 정순 왕후 김씨는 열 한살의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비로소 전면에 나서며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조선의 정치는 역사속에서 몇번의 큰 변화가 있었는데 정순왕후 김씨가 정치권력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당파 중심에서 외척 중심으로 변하는 계기가 된다.

 

어찌보면 정순왕후 김씨는 정조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준 인물일지도 모른다. 정적도 없고 누군가 제지하는 사람없이 위대한 치세를 한 사람이 없듯이 위대한 군주 정조가 있다면 정순왕후를 거론하지 않을수가 없다. 당찬 여인이였으며 총명했던 사람이였지만 정치권력 앞에서 그녀 또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산에서 태어나 순조의 수렴청정을 하며 여주, 여군이라고 칭했던 인물이며 주요 신하들에게 충성 서약까지 받았던 정순왕후였다. 정순왕후에게 숙청당했던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아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철종으로 즉위한 것을 보면 역사의 반복과 아이러니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정순왕후 간택 당시의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3간택에 들어선 정순왕후는 방에 들어갔지만 마련된 방석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았다고 한다.

윗전들이 이유를 묻자 정순왕후는 이리 대답한다.

방석에 아비의 이름이 있어 그위에 앉으면 아비를 깔고 앉는 것이기에 앉을 수 없었다고 했고 이어 대궐 지붕에 기와골이 몇개냐고 물으니 다른 이들은 모두 고개를 밖으로 빼고 대궐 지붕을 쳐다 보고 헤아렸는데 정순왕후만이 앉은채로 대답을 올렸다.

 

어찌 알았느냐는 물음에 마당에 빗물이 떨어져 골이 패인 것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가장 맛있는 반찬을 묻자 모든 음식에 간을 맞추는 소금이라고 대답한 것이나 가장 아름다운 꽃은 옷을 해 입을 수 있는 목화꽃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범상치 않았던 인물인 것은 맞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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