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체험단 및 삶이야기/역사다시 읽기

한국은 일본을 이길수 있을까? 형제 or 정적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2. 23. 06:30
728x90
반응형

일본의 자위대가 UN이나 국회의 동의 절차 없이 외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도록 법안을 수정중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불과 70여년만에 강한 국가 만들기에 다시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우군인 미국의 묵인하에 진행되고 있는데 결국 군국주의의 전단계를 밟고 있는 듯 하다.

 

지금의 일왕은 아키히토 천황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본에서 천황이 차지하는 역할은 지대하다. 1위의 영향력있는 자리인 천황은 122대인 메이지 천황-123대 다이쇼 천황-124대 히로히토 천황-125대 아키히토 천황으로 이어져왔다. 어떤 인물을 기준으로 125대를 말하냐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태양신의 후손이라고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왔다.

 

아키히토는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손자-손자-손자-손자로 이어지는 전설상의 첫 번째 왕이었다는 왕 진무의 125번째 직계 후손이라고 알려져있다. 중국의 전설적인 왕들과 유사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조상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주제의 논문은 여러편 나왔다. 일본 토착원주민은 지금 거의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일본인들이 지금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 지금 한국과 북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삼국통일 당시 신라에서 사용하던 언어가 조금씩 변형해가며 진화해온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백제와 고구려의 언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근본적으로 백제와 고구려는 형제의 나라였으며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는 지금 모두 소멸되었지만 과거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면 고대 일본어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국가를 멸망시킨 신라인들을 좋아할 이유가 있을까? 일본인들의 피속에는 한반도를 지배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메이지 유신을 생각하면 나는 메이지 시대에 도구로 사용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무사 히무라 켄신이 먼저 생각난다. 와츠키 노후히로의 만화 바람의 검심은 지금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고 속편도 개봉되었다. 다시금 제국주의에 물들게 만든 메이지 유신은 지금의 강한 일본을 만드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일본에 메이지 유신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양무운동이 있었지만 양무운동은 실패하였고 메이지 유신은 성공하였다. 국가이익에 최종 목표를 둔 메이지 유신의 뒤에는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의 3대 재벌이 있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가라도 팔수 있는 양무운동 뒤에는 이홍장, 성선회, 석정보등의 매판 새력이 있었다. 마치 지금의 한국 재벌 2,3,4세를 연상케 한다.

 

 

2차 세계대전의 원흉 혹은 주역인 히로히토 천황의 사진이다.

진주만 공습을 승인하고 결국 미국이라는 거대한 적을 만들게 만든 주역이며 일본인들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만든 인물이다.

 

1868년 도쿠가와 막부는 조슈, 히젠, 사쓰마, 도사 4대 번에 의해 무너졌다. 메이지 천황을 옹립해 메이지 유신 시대를 열었지만 이어 123대 천황이 된 다이쇼 천황은 무능하고 전략적이지 않았다. 그냥 꿈만 원대했다. 그런 사람이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에 쓰러진다. 무능했던 다이쇼를 반대한 다이쇼 정변 이후로 황권은 바닥을 기었다. 이후 황권을 회복하는길에 전쟁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중 하나가 히로히토였다. 1944년에 이미 패전의 기색이 짙어졌지만 히로히토는 빠져나갈길을 모색했다. 덕분에 맨하탄 프로젝트의 산물 리틀보이라는 반갑지 않은 선물을 받게 된다.

 

 

지금의 천황은 125대 천황이며 미국과 아주 친밀하게 지내는 인물이면서 서민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국과 형제나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물고 물리는 관계에 있는 사이 안좋은 이상한 관계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은 일어설 토대를 마련했으며 한국이 경제발전의 시동을 걸때 일본의 덕(?)을 적지 않게 보았다. 지금도 한류니하며 덕을 보고 있지만 원수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 국화와 칼을 읽어보면 일본인들이 근본적으로 한국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을 엄청나게 풀어대며 일본부활을 꿈꾸는 아베총리의 뒤에는 일본인들의 국가 사랑이 있다. 한국의 꽃은 무궁화라고 하지만 대부분 무궁화를 사랑하지 않는다. 반면 일본은 봄이면 화려하게 만개하는 벚꽃보다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를 사랑한다.

 

1868년 세상을 뒤집으면서 성공한 메이지 유신의 뒤에는 그들의 역사를 사랑하고 토착신을 사랑하는 것이 반영이 되어 있다. 한국 역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이라는 이름이라는 사용하였다. 거의 일본과 100년의 차이를 두고 만든 정치적인 판단이었으나 일본의 유신과 한국의 유신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몇천년부터 내려온 신사를 유지하고 정신적으로 통일을 했으나 한국은 오래된 토착신은 미신으로 만들어버리고 그 흔적을 지워버렸다.

 

1866년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왕국을 이끌며 명문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오스트리아를 격파하였고 이어 1870년 프랑스를 전쟁의 한복판으로 이끌어내어 보불전쟁에서 2달만에 프랑스를 무찌른다.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된 독일은 메이지 유신 초창기의 일본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럽에 갔단 이와쿠라 사절단은 비스마르크의 부국강병정책의 모델을 배워와서 메이지 유신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기독교가 가장 빠르게 퍼진 국가이며 차대신 커피문화가 폭팔적으로 퍼져나간 나라..한국

역사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가 역사를 외면할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