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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홍산에서 백성을 위해 왜구를 물리친 최영장군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2.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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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기세가 쇠할때 다양한 민족이나 세력이 융성하기 마련이다. 고려말에 원나라에 내정간섭을 받았으나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는데 원나라에 대항하던 한족이 중심이된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게 된다. 홍건적은 고려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고려는 외면하고 원나라에 쫓기던 홍건적이 고려로 들어와 약탈을 일삼기까지 한다. 이때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면서 무로마치 막부가 그자리에 들어선다. 한때 한반도에서 호족들의 힘이 강했던 것처럼 지방 영주들의 힘이 강해졌는데 먹고살기 힘들었던 왜적이 고려를 침략하기 시작한다.

 

 

금강과 만나는 부여, 강경지역은 당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쌀의 해상 운송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고려의 조운선들이 왜구의 습격을 받고 노략질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이 극심해졌다. 이때 고려의 왕건이 삼국통일을 하면서 지었다는 연산의 개태사까지 왜구가 출몰하는 일이 발생한다. 개태사는 내륙 깊숙한 곳으로 그곳까지 왜구가 출몰했다는 것은 고려 백성들의 피해가 생각이외로 심각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박인계 도원수가 왜구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고려군을 패하게 된다.

 

 

 

 

고려까지 함락시킨 왜구의 기세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자 나이 60의 최영장군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출정해 적진으로 향했다. 이때 최영장군은 우왕에게 이리 말하며 간곡히 나아가게 해줄것을 청한다.

 

"보잘것 없는 왜놈이 횡포하기를 이와 같이 하니 지금 제어하지 않으면 뒤에 반드시 도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다른 장수를 보내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으며 군사도 평소에 훈련하지 않았으니 또한 가히 쓰지 못할 것입니다. 신이 비록 늙었으나 뜻은 쇠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종사를 편히 하고 왕실을 방위하고자 함이오니 원컨대 빨리 부하를 거느리고 가서 치게 하여 주옵소서."

 

청도 홍산에 이른 최영장군은 왜구의 화살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왜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지않은 왜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멸시키다시피한 최영장군의 업적을 기려 태봉산성 정산에 홍산대첩비를 세웠다.

 

태봉산은 표고 90m에 불과한 산으로 흙을 쌓아 만든 토축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태봉산성의 둘레는 약 430m ~ 700m정도이다.

 

 뒤 왜구들은 늘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는 백발의 최만호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최영을 두려워하였다. 이후 왜구의 기세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홍산대첩은 최무선의 진포싸움, 이성계의 황산대첩과 더불어 고려시대 왜구토벌의 3대대첩으로 지금도 홍산대첩제를 매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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