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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4백여 년전의 계획도시 백제 사비성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5.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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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인 1995년 부여의 궁남지에서 대규모 발굴 작업이 있었다. 바로 고대국가 백제의 흔적이 이곳에서 적지 않게 발굴이 되었다. 신라의 흔적은 지금까지 많이 남아 있지만 백제의 흔적은 많지 않은 편이다. 사비성은 지금은 부여의 부소산 위에 있는 성터로 서양의 고대도시에 비견될만한 계획도시였다.

 

지금도 부여에 가보면 조선시대의 향교들이 적지 않은데 그 향교를 만들때 사용된 주춧돌을 보면 백제의 석재들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돌에 새겨져 있는 백제의 흔적들을 찾아가다 보면 옛 사비성의 행정구역명을 알 수 있다. '백제전'을 보면 사비성 내 민가를 상부, 전부, 중부, 하부, 후부로 나누었다고 말하고 있다.

 

부여에 가서 옛 흔적을 찾아가다보면 돌로 배수로를 만들었다는 흔적이 있다. 사비시대에 그 일대의 도로는 동서남북으로 도로가 교차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교차해 사각형의 구획을 만들어놓았다. 얼마전 글을 쓴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부여에 남아 있는 백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물이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북쪽을 바라보는 방향을 측정해보면 탑의 방향이 357도 32분으로 거의 정북에 가깝다. 1천 4백년전에 기술로 어떻게 정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부소산에서 발견되는 석축은 사비시대에 처음 나타나는 백제만의 독특한 공법이라고 한다. 성 안쪽은 돌로 쌓고 뒤쪽은 흙으로 쌓아 올렸으며 외곽에 돌을 한 겹 더 쌓아 올려 내부를 보호했다. 지금은 흔적만이 남아 있지만 사비성은 도시 전체를 감싸는 구조였다.

 

고대 국가중에서 도시 외곽에 긴 성을 두른 것은 사비성과 고구려의 장안성뿐이였지만 사비성이 수도가 된 55년이 빠르므로 최초의 도시 국가라고 보는 것이 합당해보인다. 백제는 왕후제를 실시했던 강력한 나라였다. 백제가 지방에 왕을 파견하는 22개의 담로제를 실시했으며 체계적인 호적제도를 운영하였으며 충남 부여에 위치한 사비성은 강력한 국가의 중심에 있었던 계획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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