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하남위례성은 고대국가의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백제시대 역사의 한 부분이다. 이 당시 백제가 석성이 아닌 토성을 쌓은 이유는 중국의 축성술이 토성으로 쌓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부터 많은 문화를 받아들인 백제가 석성을 쌓지 않고 토성을 쌓은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토성이 석성보다 견고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판축토성은 벽돌식 건축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알려져 있다.
백제문화단지에 조성되어 있는 위례성은 역사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조성해놓았다. 위례성으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곳은 바로 충남 직산이다. 위례산이라는 지명도 있고 산 정상에 성도 있지만 백제의 도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작다. 다음으로 유력한 곳은 경기 하남시 춘궁리 일대였지만 역시 후대의 것이라 알려졌고 풍납토성에서 700m 떨어진 몽촌토성에서도 백제시대의 유물이 나왔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 조성되어 있는 위례성은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의 자료를 토대로 축소해서 조성해놓은 것으로 보여진다. 주변에는 해자도 조성해놓아서 그럴듯 해 보인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백제에는 변변한 성곽조차 없다고"라고 기록했지만 이미 2세기경 백제는 풍납토성을 쌓을만큼 국력을 쌓은 규모 있는 고대국가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고대국가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집이 조성되어 있다. 일본서기에서는 "대성을 공격한지 7일 밤, 7일 낮만에 왕성이 함락되어 드디어 위례를 잃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한성 백제의 마지막을 지킨 것이 바로 백제 위례성이다. 온조에서 개로왕까지 이어졌던 시대는 뒤로 하고 이후에 공주시대가 열린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초기 백제의 흔적이 위례성과 함께 사라졌지만 이렇게나마 인공적으로 조성되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력한 고대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춘 역사를 간직한 위례성은 한성백제의 중심이였다. 시조 온조왕이 도읍하고 무려 21명의 백제왕이 통치했던 위례성은 풍납토성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직 그 온전한 모습을 모두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면서 이제 그 가능성마저 없어져 버렸다. 풍납토서 성벽 둘레는 3.5k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적지 않게 훼손되었다. 그렇지만 과거 왕궁의 모습은 이렇게나마 인공적으로 조성된 위례성으로 인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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