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체험단 및 삶이야기/책에 대한 생각

진심전력, 진심을 다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3.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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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장에서 이순신을 만난다는 진심전력이라는 책은 힐링하는 느낌을 전달해준다.

 

블로그를 시작한지가 8년이 넘었다. 삶의 기록이 종이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지가 오래된 것이다. 오늘날 이순신이 살아 있었다면 온라인을 이용해 난중일기를 기록했을까? 아마도 군기밀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시도일 것이다. 개인적인 삶의 발자취인 블로그와 난중일기의 공통점이라면 진심을 다한 삶의 기록이 아로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내 삶에서 이순신을 연상하면 생각나는 네가지가 있다. 명랑해전, 한산도대첩, 노량해전, 난중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중 한산도 대첩은 영화 300후속 개봉으로 인해 다시금 주목받은 세계 4대 해전에 포함이 된다. 올해 여름에 개봉할 명랑-회오리바다로 인해 다시금 이순신의 리더쉽이 주목받을 듯 하다. 한 명의 장군이 이토록 주목받은 이유는 무엇이고 그가 이룩한 성과의 이면을 보기 위해서는 난중일기를 지나칠 수가 없다.  

 

이순신은 군사들과 공감하는 사람이였고 백성들과 공생할줄 아는 인물이였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식견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했다. 난중일기는 유네스코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록물"이라며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을 정도로 가치있는 자산이며 전장에서의 이순신의 기록이다. 세 번의 파직을 당하고 두 번의 백의종군을 했으며 두 번의 사형위기를 지나쳐온 이순신만큼 다이나믹한 삶도 드물 것이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의 기록인 난중일기의 면면을 살펴보면 반복과 단순함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기록하는 수고로움은 진심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난중일기를 보면 빈손으로 지휘관에 오른 경우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내면속에 고독과 싸울망정 다른 사람을 거둘줄 아는 인물이였다. 이순신이 직접 난중일기에서 표현한 '반형좌'는 "길 옆에서 싸리나무를 걱고 그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라는 의미로 군사를 대하고 인재를 구하는 그의 열망이 담겨져 있는 표현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데에는 그가 소통하는 자세로 사람들과 열린 대화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이순신이 아닌 인간적인 이순신의 이면도 발견할 수 있는 기록들이 있는데 1594년 7월 25일 술에 취해 밤새 토하기도 하고 1594년 9월 13일에는 술이 깨지 않아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군사들과 함께한 술에 대한 기록은 예외없는 단호한 처벌을 하기도 했지만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원칙 있는 보상을 한 기록들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한 명의 장군이로 리더였으나 지역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나라의 적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어적보민'이며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휼민이였다. 영내에서는 군사를 다스렸으며 영외에서는 백성을 보살폈다.

 

 

위기는 기회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순신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였고 삶의 고난을 행복한 추억으로 만든 인물이였고 불패의 수군이 전멸했을때에도 제겐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였다. 기회를 만드는 인물이 된 것은 관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기에서 보면 이봉수라는 인물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살펴보고 대포 쏘는 것도 관찰하고 적선이 오면 형세를 관찰했다.

 

 

일기를 보면 그는 울음이 많은 사람이였다. 장검을 차고 항상 우뚝 서있을 것 같은 느낌의 이순신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면 슬피 우느라 밤늦도록 잠들 수 없었고 나라를 생각하면서 탄식을 하고 노비의 죽은 아들때문에 울어주었다. 울음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해소시키며 자신의 길을 오롯이 가서 결국에는 불명의 명장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게 된 것이다. 울음의 사나이라고 부를 정도로 울음이 많았던 그의 감정 표현은 '울보 처칠'이라고 불리는 처칠처럼 솔직한 사람이였다. 그가 흘린 눈물 한방울 한방울이 모인 그의 통곡은 왜군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 종국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이순신의 명량해전이 벌어지기 2,000년 전에 페르시아군과 그리스군의 전투인 트레모필레 전투에서 연합군 1,000명으로 17만의 페르시아군을 3일동안 막아냈다. 그가 트레모필레 전투을 알지 못했겠지만 일기에는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트레모필레 협곡의 중요성을 알아낸 레오디나스왕처럼 이순신은 목이 좁은 명량을 발견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후세에 읽히게 될 일기를 쓴 작가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책을 읽고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 탁월한 통찰력을 길러냈다.

 

두려움 없이 고독을 마주했던 그의 흔적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장군으로서 리더로서 군사와 백성과 소통하는 이순신을 보며 내가 진심으로 고독과 마주한 적이 있던가라는 자문을 해본다. 이순신이 보여준 용기와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능력은 온전하게 자신을 바라본 고독의 참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위인전으로 만난 이순신은 위대한 영웅이였으나 난중일기로 만난 이순신은 평범한 가장이였고 남편이였으며 아버지였고 전쟁터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면서 고통스러워했던 한 명의 사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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