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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12년, 염전 노예와 흑인노예는 닮아있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2. 20.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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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의 실화이기도 하면 1850년대에 자신의 책을 저술하여 노예전쟁의 씨앗을 발아시킨 주인공 솔로몬 노섭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영화 노예 12년을 보다보니 근래에 문제가 된 염전 노예사건이 연상된다. 두 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고된 노동을 감당할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였고 제대로 삯을 쳐주면 상품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1840년대에 미국에서는 노예 수입이 금지되었다. 부족한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백인들이 취한 방법은 바로 불법으로 흑인을 납치해서 재산처럼 팔아 넘기는 것이다. 특히 목화노동인력이 필요하지 않아 흑인에게도 자유가 주어졌던 북부의 일부주의 흑인들을 데려가다가 팔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었던 시대였다. 1841년 가족을 이루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은 워싱턴에 갔다가 납치를 당하게 된다.

 

몇 번의 거래과정을 거쳐 솔로몬 노섭은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루이지애나로 끌려가게 된다. 아는 것이 많아도 모르는척하고 살아야 하고 글을 모른체하고 살아야 죽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다. 12년이라는 시간동안 솔로몬 노섭은 두명의 주인을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자애롭기는 하나 노예제도를 부인하지 않는 주인인 월리엄 포드이고 한 명은 자비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애드윈 엡스로 악몽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너무나 소중한 자유를 꿈꾸던 솔로몬 노섭

 

소중한 자유를 만끽하며 살던 솔로몬 노섭은 한 순간의 판단 미스로 자신의 자유를 박탈당하게 된다. 현대인 역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에서는 현대적인 개념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피라미드 형태로 만들어진 경제시스템에서 일한만큼 번다고 하지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 한달만 벌지 않아도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인생에 한 번이라도 자유를 박탈당할 생각도 하지 못했던 솔로몬 노섭은 생각지도 못하는 악몽이 현실이 된다. 그것도 무려 12년이라는 세월동안 말이다. 전라도 섬 노예사건에도 보듯이 일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사람의 존재는 돈을 벌기 위한 소모품으로만 생각한다. 섬이 1,004개가 있어서 천사섬이라고 부르는 전라도의 섬에서 일어난 현대판 노예사건..염전 노예

 

 

노예나 머슴도 재산

 

조선시대의 머슴도 양반 댁에서는 재산목록에 속해 있었다. 누군가에 빚을 지면 그걸로 변제할수도 있고 삯을 주긴 하지만 노동의 대가라고 보기에는 형편없이 작기 때문에 수익을 창출하는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남북전쟁 이전까지 미국에서 역시 흑인이 주가된 노예 시장에서는 노예는 재산이였다. 백인이 노예가 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관리자의 입장이 강했고 주도니 재산은 흑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값어치를 매기는 중개상인이 존재했고 이들을 갈고 닦아서 시장에 내놓으면 누군가는 돈을 내고 사간다.

 

 

자비로운 주인 월리엄 포드

 

연기력 되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월리엄 포드는 노예의 능력도 인정하고 나름 인간적인 노동환경도 제공하지만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솔로몬 노섭의 아이디어도 인정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백인들 덕분에 그를 보호하기 위해 에드윈 엡스의 빚을 갚는 다는 이유를 들어 보내버린다.

 

자비로운 주인이면 괜찮을까? 부당한 시스템이라도 그곳에 묻어가는 수많은 대중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내부 고발자를 몰아가는 우리네 시스템에서는 수많은 윌리엄 포드가 그속에 존재하는 느낌이다. 잘못된 제도 혹은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고쳐야 겠지만 편안함을 포기할 용기는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에도 있다.

 

 

자비없는 주인 에드윈 앱스

 

모든 노예는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에드윈 엡스는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해냈다. 자비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여자노예는 자신의 성해소 대상외에 다른 의미는 없다. 채찍을 잘 활용하고 변덕스러운 성격덕에 변태스러운 취향까지 가지고 있다. 자신이 성경에 나오는 자애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지만 모든 사람이 그를 교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비없는 그의 행동때문에 솔로몬 노섭은 자유를 찾기 위한 다양한시도를 하게 되고 결국 12년만에 자유를 얻게 된다.

 

그는 가지만 노예는 남는다.

 

결국 솔로몬 노섭은 자유를 찾았지만 남겨진 노예의 비참한 삶이 여운을 남긴다. 백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여흥의 자리에서 영혼없는 춤을 추는 흑인들과 바이올린을 켜는 솔로몬의 눈동자에서 희망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는 과거에 암울했던 미국의 노예시대를 그리고 있지만 현대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도 어디선가 염전노예처럼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수많은 노예가 있을지 모른다.

 

노예제도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던 솔로몬 노섭이 죽은지 150년도 지난 지금 노예제도를 잘 활용하는 교활한 인간들을 보면서 인간의 시대가 끝나지 않는 이상 노예12년은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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