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비판도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몰리고 여당의 유력인사는 좌파와의 전쟁이라는 희한한 이념전쟁을 만들어 전쟁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았더라면 알지도 못했을 이석기라는 사람이 대중앞에 등장했다. 이석기같은 사람이 준비하는 국가를 전복음모의 전말을 보면서 참 한심하다못해 저정도로 앞뒤 없는 사람이 국회의원까지 되었다니 라는 실소를 머금케 한다. 아마 검찰이 조사하면서도 이거 해야 되는건가 싶을때가 많을 것이다. 이럴려고 이렇게 공부해서 검사가 되었나라는 자책도 들지 않았을까?
아무튼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를 보았다. 근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문제시 되는 인물 이승만과 박정희를 다루고 있는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영상물이다. 민족이 붙으면 무언가 좌편항적인 냄새가 나는건 사실이다. 영상은 초반부터 히틀러를 등장시키면서 자극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그 영상에서 주목받는 인물은 바로 괴벨스이다. 아마 괴벨스가 없었더라면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
1. 위대한 괴벨스?
괴벨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게 된것은 2006년에 발행된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에서였다.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양장으로 된 이책은 대중 선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동시에 그의 평전이기도 하다. 당시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인해 떨어진 독일인의 자존감과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독일인을 구한 영웅이기도 하다. 메포어음도 발행하기도 하고 실업률을 거의 제로상태에 만들면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이는 결국 막다른 길에 다가가게 될 것을 알았던 히틀러는 마지막 수단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일뿐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다.
이를 옆에서 도와준 괴벨스는 영혼을 권력에 팔아넘긴 광기의 파우스트이며 나치즘의 상징이다.
아마 지금의 기득권자는 모두들 괴벨스를 읽었던지 괴벨스를 읽은 유능한 참모를 옆에 둔 모양이다.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승리하는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괴벨스의 말이다.
모든 비판은 합리적이여야 한다. 그냥 덮어놓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해악이 심한 것도 없다. 팩트가 증명되지 않은 주장은 궤변이다.
2. 이승만은 기회주의자
한국에서 사는 사람으로 대부분의 국민이 존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초대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미국의 초대대통령 워싱턴 역시 노블레스이며 그가 한 실책도 있지만 잘 포장되었다. 한국역사에서 고려의 건국은 자연스러운 과정에 의해 진행되었다. 성골, 진골등으로 순혈주의에 몰입했던 통일신라의 패악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졌고 이에 왕건은 자연스럽게 호족세력들과 결혼을 정략적으로 활용해 그자리에 올랐다.
조선역시 이성계가 건국했지만 자신의 야욕을 위한 더러운 일(?)을 자신의 아들인 방원이 맡았기에 지금까지도 안좋은 평가보다 좋은 평가가 많다. 그러나 이승만은 가까운 근대역사의 인물이기에 너무나 많은 사실이 남아 있다.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해외에서 공부하고 오면 한 수 접어준다. 대체 해외에서 무엇을 공부했느냐는 중요하지가 않다. 놀고 왔든 어떤 생활을 했든간에 중요하지 않다. 이승만 역시 하버드에서 엉망인 성적을 보여주었고 프링스턴 대학에서 겨우 학위를 받은 인물이지만 그를 멋지게 포장해주었다.
이승만이 한국이 점령했던 안했던간에 일본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것은 미국인의 입장이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신문에 기고한 이승만의 경우 영상에서처럼 악의적으로 해석될 수는 있지만 미국인 이승만이였다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마치 독립운동가처럼 보인 행동은 교활하기가 그지 없는 행동이다.
미국와 일본의 관계는 태평양 전쟁전까지는 아주 좋았다. 제국주의가 끝나기 전에 유럽, 일본등의 패권국가가 약소국가를 지배하는 것이 정의가 되던 시기에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그다지 흠이 될일이 아니였다. 영국의 기술을 그대로 받아다가 항공모함까지 만든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같은 입장이였다. 그렇기에 미국내에서 일본을 비판한다는 것은 미국의 우방국가를 비판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였다. 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맛난 과실을 받지 못한 일본이 독일편에 서면서 악의축으로 채색이 된 것이다.
영상에서 보여준 국민회 한인 학교나 기숙학교등을 사고 팔고 자신의 빚을 국민회에 넘긴 행동이 팩트라면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만약 이것을 물증없이 조작되었다고 우긴다면 그것은 이걸 사실이라고 인증하는 셈이다.
3. 정치인 이승만 vs 순수한 김구
김구라는 인물이 지금 존경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정치인으로 한 행동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에 이승만이 정치인으로 보여준 행동은 교활했을지라도 김구보다는 한 수 위의 행동을 보여주었다. 대중이 어떤편에 서기전에 자신의 지지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근거 없이 민족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뿐이다.
이승만이 해외에서 들어오는 독립운동자금을 막고 나서 김구가 광복을 위해 항일 투쟁을 하면서 장제스의 후원을 받았다고 영상에서 보여주고 있으나 장제스는 철저한 기회주의자였고 그냥 필요한 도구였기에 김구를 활용했을 뿐이였다. 그 다음을 준비했어야 한다. 실제로 장제스가 막강한 금권을 쥐고도 공산당에게 쫓겨난 것은 그들 일당의 과도한 욕심 때문이였다. 강절재벌들과 유착, 중국의 수많은 자원의 헐값 매각등 해악이 적지 않았다. (적당히 해먹었어야지)
그런 장제스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제대로 신경쓸리 만무했다. 마치 테러자금을 주듯이 주었을 것이다. 특히 김구는 일본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는 시기를 너무 낙관했다. 이미 태평양 전쟁의 승기는 두리틀 공습이 있었던 1942년부터 미국에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일본에 근접한 미 항공모함에서 출발한 B-25가 일본 도쿄, 요코스가, 고베, 나고야등에 폭격한 공습작전으로 미드웨이 해전을 부르게 된다. 일본의 전략적인 착오로 4척의 항모를 잃은 일본은 본격적인 수세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에 남태평양 솔로몬제도 과달타날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한 일본은 패망의 시기만 저울질 하고 있었다. 임시정부가 제역할을 수행했더라면 세계 정세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어야 한다. 두리틀 공습, 미드웨이 해전, 과달타날 전투같은 굵직 굵직한 내용을 접했다면 2년 이내에 승부를 볼 생각을 하고 있었어야 한다. 협상에 나가려면 카드가 있어야 한다. 김구에게는 미국과 협상할 아무런 카드가 없었다. 그냥 한반도는 우리땅이니 나가라고 하면 그들이 나갈것 같은가? 미국에게는 한반도는 전략적인 요충지이며 일본을 이겨서 받은 과실일뿐이였다.
그 과실을 아무런 조건없이 달라는 김구와 자신의 입맛대로 잘 움직여줄 이승만중 누굴 선택하느냐를 볼 때 당연히 이승만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이득이다. 36년의 조선의 일본지배 같은것은 미국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5년간의 신탁통치 이런건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였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은 임시정부는 미국의 눈밖에 나 버렸다.
이승만 독립운동 전략 (이건 코미디?)
우리 형편상 전쟁준비는 국민들에게 맞기는 것이 옳다.
국내외 일반 국민들은 각자 직업에 종사하면서 여가시간에 병법을 연마하라
무기도 각자 구하라
그러다 좋은 시기가 오면 일제히 나서 싸우자
4. 대단한 일본
일본이 한일합방의 기틀을 마련하기까지는 적극적으로 일본내의 세력을 결집시켰다. 1868년 일본의 조슈, 사쓰마, 히젠, 도사 등 4대 번은 힘을 합쳐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시대를 열었다. 메이지 정부때 이토 히로부미는 미국의 은행 시스템을 철저하게 파악하여 금본위제를 실시하여 일본의 금융시스템의 기반을 마련했다.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은 초반을 제외하고 게릴라적인 행동에 그쳤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지만 그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가져간 과실이 무엇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CIA의 전신인 OSS가 손을 내밀었을때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승만이 쥐고 있었던 돈줄을 가져올 전략을 세웠어야 한다. 전혀 뜬금없어 보이지만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오벌로드 작전(철저한 비밀유지라 쉽지 않았겠지만)때 노르망디에 강습할정도의 끈끈한 관계를 지속했더라면 시대는 이승만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김구는 나무는 보았지만 숲은 보지 못했다. 진주만 공습후 일본하고 싸우는 것은 조선의 독립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평화와도 직결되는 일이였다. 열혈민족주의자 김구에 비해 이승만은 철저한 정치인이였다. 웅크리며 권력을 쟁취할 때를 기다렸으며 남의 손을 빌려 비열하게 다른 사람을 제압할 줄 알았다.
이승만은 맥아더나 미국에 취한 행동은 공산주의의 적은 우리와 동지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었다.
괴벨스의 말에서 처럼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를 잘 활용하였다.
반면 김구는 같은 민족이니 좌익과 우익의 구분이 어디있겠느가라는 순진한 정치적인 행보를 한다. 물론 김구의 행동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대중은 쉽게 계몽되지 않으며 유토피아는 손에 잡힐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더 빠르게 도망간다. 조선 건국의 기반을 마련했던 정도전, 홍길동의 허균, 날선 조광조의 생각이 맞았지만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데 김구는 초기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었던 힘의 한계도 몰랐고 미국이 가지고 있던 힘의 거대함은 생각하지 않은채 이곳은 한민족의 땅이니까 당연한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아무런 이득을 줄 수 없다면 미래를 주었어야 한다. 니편 내편을 좋아하는 떠오르는 강대국 미국에게 김구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승만은 전략적으로 남한을 이용해도 좋으며 자신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라는 인식은 심어주었다.
굳이 정치적으로 비유하자면 전국에 영향을 미치는 실력자에게 공천을 받지도 못했는데 지역 토박이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 너희들의 공천따윈 필요없다고 공언하고 선거운동을 한 셈이다. 게다가 시절이 하수상하여 살인같은 극단적인 방법도 먹히던 시대에 말이다.
초대 대통령이 대다수의 국민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것도 축복받을만한 일이다. 그러나 독재, 자신의 이득추구, 정치깡패, 한국전쟁때 대통령으로서 한 행동 모든것을 종합적으로 볼 때 이승만은 존경받을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포장하는 것은 차악을 감추기 위해 최악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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