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SF)

뉴욕타임즈 2013년 1위 영화, 그래비티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3. 12.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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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Space

 

새로운 생각 색다른 우주

 

#1 그래비티는 지구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소행성이나 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생명체를 찾아 나선다는 그런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다. 지구에서 600km 떨어진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벌어지는 한 인간의 생존투쟁이 이토록 많은 스토리텔링과 감성을 전달하게 될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3D로 만들어진 영화에 복잡한 스토리구조나 관념적인 부분을 넣는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오지 않을까라는 우려는 그래비티를 통해 불식시키면서 타임지 선정 2013 최고의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2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세어보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나왔다. 대부분의 영화는 재난 혹은 선악의 구도, 외계생명 탐사를 통해 중력이 존재하지 않은 우주에 의미를 부여한다. 90분 동안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준 그래비티의 시간은 실제 국제 우주 정거장 ISS(International Space Station)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과정에 걸린 시간과 일치한다.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4년의 시간동안 각본을 묵혀두고 있다가 기존 SF 영화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의 기술력을 가지고 제작하면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영화의 러닝타임까지 맞춘 것이다.

 

 

 

#3 영화의 줄거리는 딸의 죽음으로 인해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한 여성 우주인이 우주에서 죽음의 순간에 삶의 의미를 되찾고 모든 역경을 헤쳐나간다음 지구로 귀환한다는 내용이지만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를 만들어준 우주가 과연 우리에게 던져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인 듯하다.

 

#4 중력(Gravity)이 미치는 지구에서 너무나 사소해 보이는 일상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바로 그것이 삶의 의미란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서 지구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삶의 소리들에 기뻐하는 라이언을 보면서 관객들 역시 삶에 강력한 의지를 가지게 된다. 죽음과 삶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였더라도 라이언을 비난할 순 없지만 그녀가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을 때 안도하고 있는 관객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비티에서 라이언이 소유즈호 속에서 착용하고 있는 우주복 패치의 숫자 42는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의 답일지도 모른다. 먼 미래에도 아직도 그 의미를 못 찾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서 찾은 숫자 역시 42라는 뜬금없는 숫자이니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관

 

#1 그래비티에서 표현된 우주는 치열한 삶과 생존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우주가 생명을 만든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태어난 지적 생명체는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는 것이다. 먼 미래에는 우주로 나가서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하는 것은 인류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주를 연상할 때 무한함, 새로운 생명체, 무중력의 상태, 고요함이 연상하며 지구에서의 삶의 연장선상이 아닌 새로운 개척지를 찾고 거창한 목적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다.

 

#2 그래비티가 추구한 것은 거창한 우주관이 아닌 우주에 홀로 남겨진 그녀를 통해 지구에 남겨진 삶의 의미와 맷과 죽기직전에 대화를 했던 짧은 수다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주를 두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라이언의 시선은 끊임없이 지구를 향하고 있고 이해하려야 할 수 없는 우주의 미스터리보다 중력이 미치는 지구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매혹이 된다.

 

#3 실제로 그래비티에서는 우주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그 흔한 달의 영상이나 아련한 은하수 같은 것은 보여주지도 않는다. 시종일관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 라이언의 시선에서 보면 상상했던 만큼 우주가 아름답지도 않으며 우주에서의 위험은 외부에서 날라온 소행성이나 정체불명의 운석조각이 아닌 지구 궤도상에 인공위성의 파편 등이 늘어나 궤도 전체를 뒤덮인다는 캐 슬러 신드롬 (Kessler Syndrome)에 의해 생명의 위기를 겪게 된다.

 

#4  우주에서 죽게 되는 확률 낮은 행운(?)을 얻게 된 라이언은 처한 숙명을 받아들일 것처럼 보였지만 마침 나타난 맷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삶의 가치가 소소한 일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비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구에 비해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그건 SF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비티는 막연했던 우주의 이미지보다 삶의 진한 향기를 묻히면서 우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현실로 돌리게 만든다.

 

 

 

죽음의 문턱에서 찾은 삶

 

#1 삶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라이언을 보면서 문득 한국의 자살률이 뇌리를 스쳤다. 좋은 인생,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가정이라는 삶의 표준을 강요당하는 현실과 주위와 동화되지 않는다면 외면 받는 사회 속에서 삶에 대한 의지의 끈이 느슨해지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은 어둠만이 가득한 우주에서 다른 사람과 오히려 비교되지 않는 사소한 일상이 가장 큰 행복이고 살아야 될 이유라고 깨닫게 된다.

 

#2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삶속에서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일어버렸던 라이언은 우주에서도 아무런 의미 없는 소리를 해대는 맷의 집요함에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그 대화가 자신을 살리게 될지는 그때는 알지 못한다.

 

#3 우주는 왜 살아야 하는지 삶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삶의 복잡성과 묵직한 의미 따위를 말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철학적인 의미일 뿐이다. 그래비티가 산드라 블록과 궁합이 너무나 잘 맞는 이유는 둘 다 기초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래비티가 화려한 볼거리의 SF영화가 아니듯이 산드라블록 역시 화려한 얼굴의 배우가 아니다. 예쁘고 매력적인 배우가 넘쳐나는 헐리우드에서 그녀가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연기에 군더더기가 없으며 그 기초 역시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그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4 삶과 죽음의 차이는 명쾌하고 단순하다. 죽음은 인생에서 가장 큰 발명이라는 스티븐 잡스의 말도 있듯이 우주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심각한 일이 아니다. 산드라블록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연기하는데 과거의 트라 우마(10대 초반에 계곡에서 굴러 떨어졌다.) 가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삶의 긍정요소와 죽음의 강한 기억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그녀가 연기한 그래비티의 라이언은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고 그 진실 됨을 감독이 의도한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SF no Reality Yes

 

#1 만약 이 영화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SF를 지향했다면 그저 그런 영화로 전락해버렸을 것이다. 기존 SF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무려 5년(제작기간 포함)이라는 시간동안 준비해서 우주에서 만날 수 있는 리얼함이 무엇인지 스크린에 그려냈다. 그가 있었기에 우주를 다룬 영화는 그래비티 전과 그래비티 이후로 나누어지게 된다.

 

#2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관객이 Space Reality를 만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주었다면 튼튼한 배경위에 과장되지 않는 신전을 짓는 일은 산드라블록이 맡았다. 영화의 일부분에 조지클루니가 출연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의 역할이고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하는 배우는 온전히 산드라블록의 몫이었다. 연극계의 위대한 스승 샌포드 마이즈너에게 배운 그녀는 무대 혹은 카메라 앞에서 진실한 행동과 스스로 만든 연기스타일의 진가를 그래비티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3 샌포드 마이즈너는 배우 개개인의 경험에 의존하는 연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으로 연기란 ‘상상적 환경 아래서 진실하게 사는것’이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 산드라블록은 우주로 나가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상적 환경인 우주왕복선에서 모든 역경을 기적적으로 극복하고 왜 그녀가 지구로 귀환해야 하는지 타당성을 부여한다.

 

#4 안젤리나 졸리가 두 번 거절하고 10여명의 배우가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지만 결국에 닥터 스톤의 배역은 산드라블록에게 돌아가게 된다. 다른 배우들에게 있는 기교나 스타일 혹은 카리스마가 역경을 겪은 후에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부여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관객을 잡아준 Gravity.

 

#1 다큐의 느낌이 물씬 풍겨 나오는 예고편 트레일러를 보면서 반신반의 했다. 보통 계고편안에는 그 영화의 핵심 내용이 담겨 있는데 영화 속에서 극적이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부분을 보여주면서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예고편이 조용한 재난영화 같았던 그래비티는 예고편의 힘보다는 보고 나온 관객들의 스토리텔링에 이 영화의 중력(Gravity)이 결정되었다.

 

#2 일명 트레일러리즘은 관객의 행동과 소비에서 발견되는 경향으로 그래비티의 경우 초반 호기심에 의해 도입기에 관객 수가 매우 천천히 증가하다가 호평에 의해 성장과 성숙, 쇠퇴기가 길어지면서 장르상 벌써 내려갔어야 할 영화가 극장에 오래 걸리게 된 것이다.

 

#3 영화의 제목인 그래비티처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가 관객들의 호기심 중력(Gravity)을 점점 커지게 만들면서 처음에는 조그마한 달의 중력이 거대한 태양의 중력처럼 커져갔다. 초보 우주인 라이언 스톤 박사가 느꼈던 중력의 위대함을 관객이 같이 체감하게 만든 것이다. 이건 영화 상영시간 90분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전달하기 힘든 배우의 경험을 그대로 이전해주면서 내면의 파도를 출렁이게 한다.

 

 

#4 죽기 직전에 보았던 맷의 환영과 살아남기 위해 라이언 스톤 박사가 경험한 삶의 의지까지 그녀가 겪은 시각에 의한 경험, 청각에 의한 경험, 맷의 죽음, 무사히 들어간 우주선에서는 엄마의 자궁속으로 다시 들어가고픈 현대인의 모습과 지구에 도착한 이후에 겪은 중력의 새로움까지 마치 자신이 겪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우주를 그렸으나 우주를 표현하는데에는 관심없는 영화 그래비티는 지구의 중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말하고 있다.

 

#5 우주로 나아가는 것은 기술력의 정점에 서 있는 일이다. 무중력의 세계에서 몸은 자유롭지만 폐쇄적인 공간에서 생명의 동아줄이 없다면 언제든지 우주 미아가 되어 삶의 끈을 놓을 수 밖에 없다. 기술문명의 극단에 서있었지만 오히려 지구에서의 소소한 삶이 소중하기만 하다. 아들을 빼앗긴 지구에서의 탈출했으나 어떤 시골마을에서 들려오는 소소한 소리들은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반가운 소리들이다. 개짓는 소리, 아가의 소리 같은 소리들이 그녀를 초인과 같은 힘으로 지구로 회귀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6 기념비적인 SF 드라마의 걸작 그래비티를 만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시도는 동양적인 윤회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특히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 엔딩장면에서는 생명체(산드라블록)가 구부정하게 있다가 완전히 서 있는 자세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생명체의 진화를 의미하며 마침내 온전히 홀로선 인간을 표현하는 듯 하다.

 

"멋진 여행을 했다고 자랑하게 될지, 불에 타 죽을지 둘중 하나야

 

어느 쪽이든 밑질 건 없어!"

 

맷의 대사처럼 인생은 그렇다 어떤 쪽을 선택하건 간에 밑질 건 없다. 설사 그것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른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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