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나이트나 클럽 혹은 극장식 스탠드바에 가보면 원나잇을 위해 그곳을 찾는 남자와 여자가 북적거린다. 이들은 성적인것을 추구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것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뉴욕에서 나름 성공한 뉴요커 브랜든은 온통 여자와의 관계하는것만 생각하고 살아간다. 모든 생활이 여자에 집중되어 있고 주체할수 없는 욕망 해결에 목적을 두고 살아간다. 많은 성인들이 알겠지만 그런 관계뒤에는 마음속이 텅빈것 같은 공허감이 남는다는것이다.
현대인들이 투영된 셰임
결혼과 출산, 육아 이런것들을 요구하기에는 이 사회가 삭막해져가기만 한다. 누군가의 가족과 얽히고 책임을 지기에 개인적으로 많은 희생을 강요한다는것이다. 영화 셰임은 그런 개인의 일상을 극단적으로 그리긴 했지만 변화된 사회상과 무관하지가 않다. 그런 브랜든에게 불쑥 나타난것은 여동생 씨씨이다. 원나잇을 하고 쿨하게 헤어지는것에 익숙한 브랜든과 달리 씨씨는 사랑을 갈구하고 관계에 상처받는 인물이다.
벗어날수 없는 욕구중독
사람들은 모두 욕심을 가지고 있다. 욕심이 없다면 아마도 무언가를 깨닫고 절에 가 있을것이다. 경제적인 여력이 되지 않아도 자식을 많이 낳는것은 자신의 DNA가 만든 다양한 종족번식의 욕심을 가지고 있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들은 자그마하지만 안정적인 행복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이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가정을 형성하고 자식을 낳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요구하는것 뿐이다.
성욕, 재물욕, 권력욕, 명예욕중에 셰임의 주인공은 성욕이라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소재를 다루고 있다. 섹스중독자가 된 브랜든은 내면적으로는 고립된 자신의 처지를 재확인하려고 섹스로 소통하고 다시 공허한 상태로 놓이게 된다.
혼자서는 불안한 존재들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는 브랜든 역시 다른사람과의 정서적인 교감 나누기에 부족한 사람이고 여동생 씨씨역시 사랑을 갈구하면서 그 관계를 잃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나약한 인물이다. 서로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서 노력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수많은 사람과 끊임없이 섹스를 하면서 육체적인것외에 다른사람과의 교감이 없는 브랜든은 현대인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가족이 있지만 자신의 역할을 해내야 하고 친구들과 만나긴 하지만 진심을 전달하는것은 쉽지 않다. 소통없는 브랜든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고립된 사람의 모습을 깊이 있게 그리고 있다.
현대인들은 크고 작은 허세를 부리면서 살아간다. 허세로 포장을 한채 진실된 관계를 외면하는 우리들은 어찌보면 자기 절망과 후회를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브랜든과 비슷해보인다. 시계추처럼 회사를 왔다갔다하고 남들이 다하는것처럼 적당하게 보여주는 삶속에 진실된 소통이 있었던가?
셰임은 도발적이고 성적인 관계에만 치중된 영화가 아니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공허하면서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을 제대로 표현해낸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이 보기에 이렇게 생각많은 영화는 대중적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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