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드라마)

천하칠검 양가장,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어선 아들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3. 6.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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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칠검 양가장은 실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요나라와 송나라가 같이 공존했던 시기를 그린 영화로 요나라는 거란이 당나라 말기에 질라부의 야율아보기가 거란국을 세운후 2대 황제때 요나라라고 칭했다. 송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당시 송나라 명장 양업과 그의 7아들을 다룬 영화가 천하칠검 양가장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송나라는 춘추시대의 송이 아니라 남북조시대의 송나라이다. 보통 1127년 금나라에 밀려 장강 이남으로 옮기기 전에를 북송 이후 임안으로 도읍을 올린것을 남송이라 구분했다. 북송, 남송을 모두 합쳐 송이라 부르며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견한 왕조이기도 하다.

 

북송시대의 양업

 

영화의 주인공 양업 혹은 양무적은 남송이 아니 북송시대의 인물이다. 원래 양업은 북한의 명장이였는데 송나라가 회유를 해서 송나라로 귀순하게 된 인물이다. 양업은 980년에 안문에서 요나라 군대에 기습 공격을 가해서 전투에서 이겼다. 이때 아버지를 잃은 요나라 장수가 복수를 한다는 설정이다.

 

이후 986년 송군은 요나라를 다시 공격하였는데 처음에는 이기다가 추후에 기만관에서 대패하고 양업은 석갈곡으로 철수하였다가 요나라에 포위당해서 죽게된다. 이때 양업의 7아들인 대랑에서 칠랑이 아버지를 구하려고 출정했으나 여섯째만 살아남고 모두 요나라에 추격당해서 죽게 된다.

 

 

맞설장군이 없는 송나라

 

986년에 양업을 잃은 송나라는 1004년 요나라가 남하하자 진종은 매년 제물을 보내는것으로 화의를 맺는다. 이후에도 서하라는 나라에도 제물을 보내는것으로 화의를 맺는다. 기득권의 증가에 송나라는 세수감소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그 유명한 왕안석의 신법이 등장한다. 기득권의 힘을 빼았는 신법은 결국 지주, 상인세력, 관료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송나라의 국력을 기울어져 간다.

 

이후에 1121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힘을 합친 송나라는 요나라를 멸망시킨다. 이후 1276년 쿠빌라이 칸에 의해 송나라의 양양, 수도임안이 점령되면서 송나라는 멸망한다. 고려 역시 40년에 걸친 7번의 전쟁의 패배이후에 원나라에 복속된다. 발해이후에 만주를 지배한 나라는 거란의 요나라로 고려 역시 요나라의 많은 전쟁이 있었는데 요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지 않았을때 고려와 전쟁을 벌였다. 송나라가 패한후 고려와 전쟁한 993년, 이후에 송나라에서 제물을 받기로 한 이후 1010년, 금나라에 밀리기 전인 1019년 이렇게 세번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고려와 달리 송나라는 양연을 믿고 요나라를 밀어붙인다. 결국 중국역사에서 양연과 일곱아들은 충신으로 그려지지만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고려와 거란 1차전쟁때 그 유명한 서희의 소손녕과의 담판이 나오는데 이때 강동6주를 획득한다. 이후에 그 유명한 강감찬의 1019년 귀주대첩이후에 고려는 거란을 완전히 몰아낸다. 국력이 약해진 요나라는 불과 2년후에 금나라와 송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영웅을 만들려는 중국

 

중국 역사에서 거란이나 여진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한족이 있었다. 송나라의 양연과 7형제를 다룬 천하칠검 양가장은 중국의 무대에서 자주 등장하고 이후에 남송시대에 금나라에 대항했던 장군 악비도 그들의 영웅이다.

 

일곱 아들을 천하칠검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천하칠검인지는 몰라도 전략에 실패했던 양업을 구하기 위해 아들 모두가 참전하고 그중 한명이 여섯째만 살아남게 된다. 아마도 이시기를 기점으로 양가도 가세가 기울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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