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스릴러)

브로큰 시티, 추잡한 욕망의 도시에 희망이 있을까?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3. 4.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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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권이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4월 1일 막강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다주택자에게도 양도세를 면제해주고 새로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에게나 예전에 있었지만 지금의 무주택자에게도 파격적인 조건 DTI, LTV 제한없이 화끈하게 빌려줄테니 집을 구입하라는 것이다. 정말 무주택자에게 파격적인 조건처럼 보이는데 왜? 난 미국의 서브프라임사태가 연상되는것일까? 프라임의 조건은 안되지만 그래도 그정도에 준하지 않을까라는 이상한 기준으로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어 집을 구입하게 만들었던 미국과 다를것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서두에 저런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하는것처럼 하면서 결국에는 기업과 정계, 공직자사회가 나누어 먹기 하려는 브로큰 시티의 이면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도시빈민가의 재개발을 하면서 빈민을 위해 혹은 서민을 위한 공간이 남아 있었던 적이 있던가? 용산처럼 천문학적인 돈이 거론되지만 결국에는 대박 뒤집어쓸 국민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개발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욕망의 시장 니콜라스

 

야망있는 뉴욕 시장 니콜라스는 과거의 누군가와 상당히 닮아 있다. 엄청난 환상쇼를 보여주고 나서 시민이 동의를 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그사람과 희망을 부풀리고 빈민가를 개선하겠다는 뉴욕시장 니콜라스는 어딘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진다.

 

 

정의가 사라진 도시 뉴욕

 

미국 경제의 중심 뉴욕에서 의문의 충격사건에 연루되어 옷을 벗은뒤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면서 살아가는 전직 경찰 빌리는 자신이 해고되도록 조장한 니콜라스에 의해 다시 고용이 된다. 거액을 준다는 말에 사건을 조사하지만 설상가상 캐틀린의 정부가 시신으로 발견되자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브로큰 시티는 돈과 권력을 차지하려고 온갖 비리와 부정을 서슴지 않는 무리 가운데도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내부고발자라고 하고 배신이라 읽는다.

 

대기업이든 노조이든간에 자신들의 잘못을 외부에 발설하면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는다. 정의를 위해 내부고발을 했지만 그들만의 리그에서 좋은것이 좋은것이지 정의란 없다. 이 영화에서는 정치를 중심으로 자본 권력과 수사기관의 결탁이 회전문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결국 이 모든것이 추잡한 욕망때문이다.

 

브로큰 시티는 대전의 멀티 플렉스 영화관 CGV 4곳중 한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그만큼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의미이지만 이런 영화가 사회를 바꾸는데 있어서는 의미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공정하고 가장 큰 경제력을 자랑하는 국가 미국의 뉴욕에서 일어나는 비리 그리고 음모는 그냥 지나가기에는 불편한 진실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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