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가 주는 클래식한 감동은 컨텐츠가 주는 힘은 기술을 뛰어넘는다는 믿음을 선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많은이들에게 따스함을 준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걸 기대해서인가?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너무 평이한 영화가 되어버린것 같다.
고등학생때가 기억이 나는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다. 나조차도 고등학생때의 추억이 있긴 하지만 단편적이다. 게다가 지금의 학생들의 생각을 이해할수 있을까? 글쎄 지나왔지만 그걸 기억하고 그 입장에 서있는것은 쉽지 않다. 흔히 온라인에서 많이 언급되는 이야기중에 남자 군대가는 힘든 기억 그리고 여자가 출산을 해야 하는 아픔과 비교하는데 이는 비교불가의 어리석은 질문의 대표성을 담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63년이다. 1963년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로 막 경제개발을 시작하던때였고 일본은 20여년의 전성기로 가는 진입기였다. 한국의 경우 70년대 중반에 일본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갔다. 영화의 감독은 과거를 회상하는듯 하다. 잃어버린 20년대신에 전성기의 20년을 꿈꾸는듯 하다. 강한 일본은 결국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비롯된다는것을 알려주고 싶었던것일까?
일본의 감성적인 이야기
일본의 요코하마의 열여섯살 여고상 마츠자키 우미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코쿠리코 언덕에서 하숙집을 운영한다. 실종된 아버지를 생각하는 소녀 우미는 학생신문 편집장 카자마 슌과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이들은 오래된 동아리 건물 철거 반대 운동에 참가하게 된다. 한국은 오래된건물은 별 효용가치가 없는 대상일뿐이지만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는 보존해야 될 대상으로 보는 사례가 많다.
추억은 소중한것이다.
오래된 건물 그리고 등사기로 밀어서 만들던 주보 혹은 좁은 뒷길이나 낡은 건물의 흔적은 아련한 추억일지는 모르지만 돈으로 살수 없는 가치일수도 있다. 누구나 추억은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것만을 찾는우리네 현실에서 이런 영화가 주는 감동은 그다지 크지 않을수도 있다.
고등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아날로그적인 추억이 우리세대에게 남기는것은 과거로 회귀하여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말하고 싶었던것일까?
우리 사회는 까르띠에 라탱같은 문화를 잃어버렸다.
영화에서 철거되어야 되는 건물 까르띠에 라탱은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지금도 자주 서점에 가보지만 대부분 매대를 장악하고 있는것은 모두 자기개발 혹은 투자, 돈벌기이다. 문화코드는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힘들다. 각양각색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아리 학생들이 활동하던 그 공간 까르띠에 라탱은 낭만과 학문의 자유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군국주의는 수많은 애니메이션에 의해 미화되고 혹은 포장되어 왔다. 그때시대에 태어난 주인공들은 이렇게 포장되어 있는 일본문화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 영광의 과거를 추억하고 영광의 경제 성장기를 꿈꾸는 일본은 한국에게는 불편한 나라일수 밖에 없는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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