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대전을 올때면 흔히 여행 일정에 대전역이 들어가 있다. 왜 대전역일까?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도시 대전은 아니지만 오래된 상권이 바로 대전역 앞에 은행동, 선화동, 대흥동등이 위치해 있기 때문일것이다. 대전역 전면에는 오래된 구시가지가 있어서 사람들이 밤에 걷기에는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닌것도 사실이다. 그 덕분인지 이 근처는 12시만 넘어가면 상권이라 불릴만한 곳이 거의 없다.
동구와 중구를 이어주는 도로가 개통이 된것도 몇년이 지나갔지만 균형발전은 요원하기만 하다. 예전에 대한통운과 대전역이 중심지였을때 많은 이들이 이앞을 지나다니면서 상행위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어준 기차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대전역을 기점으로 시가지의 발전은 1904년으로 돌아간다. 경부선 철도의 개통이 바로 1904년으로 대전역을 중심으로 시가화가 시작되고 1914년 호남선 개통과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대전군으로 명명, 1926년 외남면 일부를 흡수 대전의 도시계획사업이 처음 실시 된다.
대전에 사는 사람들조차 다시 충청도로 이전해가려는 충청남도 도청이 1932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것을 아는 사람이 적다. 바야흐로 1932년 충남도청이 이전해오면서 대전은 교통중심과 더불어 행정의 중심으로 발전이 되어 간다. 이 근처에 돌아다니다보면 예전의 흔적들을 찾을수 있다. 대전역 전면의 중앙시장을 지나 인동시장을 가보면 대전, 충남시장에서 쌀 시장의 중심지의 흔적이 남아 있고 아직까지도 쇠를 두드리는 조막손 대장간도 자리하고 있다. 할아버지-아버지-손자에 이어 70년동안 그자리에서 대장간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 추억을 이어갈사람이 없다고 한다.
오래된 흔적의 대전역
대전역은 서울의 유명한 지역적인 상징성이 있는곳만큼 대전에서는 중심지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현안이나 정치적인 이슈가 있을때마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바로 상징성때문이다. 대전을 상징하는 대전역은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지도 수년이 경과되었다.
나의 어머니도 대전의 아카데미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보았다고 한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멀티플렉스가 생기기전 대전극장, 신도극장, 아카데미 극장, 중앙극장은 대전의 유명한극장이어서 줄서서 영화표를 끊곤 했었다. 지금은 아카데미극장만 멀티플렉스로 변신을 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차장이나 근접하는것이 쉽지 않아서 없어지는것도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일제 치하에는 대전에 대전극장과 경심관 이렇게 두개의 극장이 있었다.
대전역을 부근으로 구도심이라고 하면 대전천을 가로지는 중앙로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경부선 철로, 서쪽으로는 도청 뒷길, 북쪽으로는 우암로, 남쪽으로 대흥로까지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중구, 동구 14개 행정동을 포함한다.
복개된 구도심의 하천
대전도 개발시대의 상징이 있었다.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이 하천과 역을 중심으로 초기에 도시의 발전이 시작된다. 이런때에 하천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메꾸어서 비싼땅을 이용해야 하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구도심의 하천을 덮어버리고 건설한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는 지금은 그흔적을 찾아볼수가 없지만 당시에는 만남의 장이며 상권의 노른자위라고 불리던 곳이였다.
서울의 청계천같이 이 앞을 흐르는 하천은 자연하천이다. 물론 도심에 흐르는만큼 물이 깨끗할수는 없지만 탁계천이라고 불리였던 청계천에 비하면 상당히 깨끗한편이다. 도심이 집중되어 있을때 가장 쉽게 건물을 지을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하천을 물 흐를 공간만 남겨두고 덮는것이다.
산책할만한 공간 대전천은 대전의 시민들에게 볼만한 하천과 산책로를 선사한 과거 개발의 흔적은 역시 도시가 발달하면서 남겨둔 흔적중 하나이다. 그래도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는 과거 대전에 사는 자영업자에게 필요했던 건물이였다.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이곳은 젊은이들의 모임의 대표적인 장소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유명 커피숍등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과거 금싸라기 땅이였던 은행동은 중앙로의 지하상가를 중심으로 으능정이 거리들이 상권의 핵심이다. 예전에 은행동은 넓은 들판 가운데 대전천편에 으능정이, 목척리 등 두개의 마을이 있었다. 은행동이라고 부르는것은 이곳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서 은행나무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은행동이라고 불리기 시작이 되었다는것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듯 하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이지역의 가장 큰문제점은 노상주차의 문제와 도로여건이 불량하고 동서간 보행동선이 지하화로 단절된것이 있다. 특히 구도심에 위치한 재래시장의 경우 상인들의 주차공간 점유로 이용객들의 주차공간이 부족하고 차량과 보행자의 혼재로 인하여 안전문제등이 항상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주택가의 영세필지는 이 지역을 거니는 주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
사진의 목척교 조형물이 멋지게 설치되었지만 목척교는 과거에 대전교라고 부르던 다리였다. 지금 다시 하천으로 돌아온 대전천에 설치된 목척교는 1960년대 복개되기 이전에 대전시에서 새 다리를 놓게 되면서 목척교라 불리였고 지금은 저런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목척교를 중심으로 바라보면 중심시가지는 도시기능의 분산과 인구의 감소현상으로 인해 다핵공간구조가 심화 진행되어 공동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보여진다.
구도심의 맛집
구도심의 맛집들은 대부분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일식집이나 참치집도 있긴 하지만 둔산동에 비해 조금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주변에는 칼국수집이 유난히 많은편이다. 구도심의 맛집중 이 주변에서 칼국수집으로 유명한곳은 신도칼국수, 대선칼국수, 광천식당정도가 많이 알려져 있다.
지민이의 식객에 포스팅된 대전역을 중심으로 한 맛집을 포스팅하면 아래와 같다.
밀로 만든 먹을만한 음식점들
식객 여든세번째 막강한 내공의 신도칼국수 (http://blog.daum.net/hitch/5472053)대전에서 함흥냉면의 지존 '수라면옥' (http://blog.daum.net/hitch/5473567)
50년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선손칼국수 (http://blog.daum.net/hitch/5473577)
고기종류로 먹을만한 음식점들
식객 쉬흔번째 이야기 오징어 불고기 (http://blog.daum.net/hitch/3286471)
여름을 이겨낼 돼지고기 요리 '황소집' (식객 323) (http://blog.daum.net/hitch/5472679)
구제역도 비켜간 돼지갈비집 '대전갈비' (http://blog.daum.net/hitch/5473015)
'명랑식당' 푸짐하고 든든하게 한그릇 (http://blog.daum.net/hitch/5472497)
콩나물등의 서민형 음식점
여성들이 좋아할 중국식요리 맛집 (http://blog.daum.net/hitch/5473365)
옛스런 오징어의 참맛 '소나무집' (http://blog.daum.net/hitch/5473569)
소시민의 삶이 묻어 있는 부산오뎅 (http://blog.daum.net/hitch/5473530)
아침에 올갱이를 시원하게 한그릇 (http://blog.daum.net/hitch/5473049)
단돈 만원에 모든걸 먹을수 있다 '한성식당' (http://blog.daum.net/hitch/5473325)
회와 참치류
제대로된 참치맛을 보여주마 '대흥동 일품참치' (http://blog.daum.net/hitch/5472188)
참치는 100가지의 맛을 가진 음식-마구로 (http://blog.daum.net/hitch/5472532)
산낙지가 비벼주는 맛집 '형네낙지' (http://blog.daum.net/hitch/5473038)
먹을만한것만 내주는 할매횟집 (http://blog.daum.net/hitch/5473565)
구지하상가는 단순히 교통공간?
50대의 상당수가 창업시장에 몰려있다. 그러나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창업아이템은 그다지 많지는 않다. 치킨집부터 시작해서 커피숍 및 휴대폰 대리점, 요식업등의 한계적인 아이템뿐이다. 구지하상가를 10~20분만 걸어보면 일부 아이템에 집중되어 있다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30%는 휴대폰 대리점이고 30%는 귀금속등의 아이템을 파는곳 나머지는 의류와 패션잡화등이 영업을 하고 있다.
영업점들의 특징을 보면 대다수가 그다지 기술이 필요하던가 단골이 유지되는 아이템이 없다는것이다. 특히 일부 아이템에 집중되어 있다는것은 기술 및 트랜드의 변화에 따라 폐업으로 몰릴수 있다는 점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신지하상가
구지하상가에 비해 신지하상가는 상당히 유동인구가 많은편이다. 물론 추후에 만들어져서 쾌적한것도 있지만 젊은이들이 통행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있을만한 공간이 신지하상가가 적합해서 그런듯 하다. 신지하상가의 우측편으로 올라가면 선화동이 있는데 이 근처의 초등학교로 유일한 선화초등학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자제만 입학을 할 수 있었고 광복후에도 대전의 명문초등학교로 잘 알려진곳이지만 지금은 도심 공동화로 유명무실하게 변한듯 하다.
신지하상가 역시 휴대폰 대리점은 상당히 많은편이다. 기술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고 별다른 인테리어가 필요하지 않은 휴대폰 대리점은 가장 하기쉬운 창업아이템일수도 있다. 이외에 신지하상가는 잡화를 비롯하여 각종 화장품과 의류등이 골고루 포진해있지만 상당수의 매장이 1년을 채넘기지 못하고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허름한 집들이 상당수가 남아있는곳이 바로 선화동이다. 큰 대로변으로는 높은 빌딩이 위치해 있지만 이면도로로 조금만 들어가면 이렇게 공동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대로변의 삼성생명이 있던 자리는 대덕군청이 있던 자리였고 갤러리아 동백점이 있던자리는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이 있던 자리이다.
이안경원을 기점으로 구성된 으능정이 거리는 1996년 대전 중구청에서 정했는데 구도심 활성화 대책의 일환이였다. 1996년 전선을 지하화하고 각종 노상 지상물이 철거되고 아스콘을 깔아서 문화거리를 조성했지만 지금은 프랜차이즈나 각종 패션소품들을 파는 상점 위주로 구성이 되어 있다.
1991년 대전시는 도시기본계획에서 도시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대전역 중심의 단핵구조에서 다핵공간구조로 개편하였고 현재의 대전도시형태를 만들어 왔다. 대전역이 다른 부도심등보다 가진 강점이라면 아무래도 역사.문화적 전통이 강하다는것이다. 도심 전문화 기능이 선별적 강화가 필요하고 거시적 정책과 미시적 정책을 병행할 필요성이 있다. 시민들이나 도심을 찾는 사람들은 냉정하다. 우선 도심지역의 이미지나 지구별 정비가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뿐더러 교통이 불편한 지금은 대전역에 많은 사람들이 찾게 해서 상권을 재활성화한다는것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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