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공포)

'고양이 :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 참~ 따뜻한 공포영화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1. 8.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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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나서의 느낌!!..정말 따뜻한 공포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화속에서 생명경시풍조라던가 누군가에게 악하게 대하는것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라는 그런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어하는것은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공포가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따뜻하게만 흘러가는것은 감독의 성향이라고 보여진다.

 

잔잔하게 그리고 관객의 별로 원하지는 않는 따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영화 고양이 : 죽음을 보는 두개의 눈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어릴적의 충격으로 폐쇄 공포증을 알고 있는 ‘소연’은  펫숍의 미용사로 일하는 그녀는 사랑스러운 동물들을 보살피며 살아간다. 갑자기 어느날 주변에서 의문사가 발생하고 그 의문사의 배경에는 항상 고양이가 존재한다. 두개의 눈이라고 해서 먼가 특이한 설정일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도 두개, 개도 두개, 고양이도 두개의 눈이다. 그래서 죽음을 보는 두개의 눈..제목에는 별다른 의미는 없다는것

 

정신적인 장애

 

수많은 공포영화에서 정신적인 장애는 귀신과 연결되는 혹은 동물과 영적인 교감을 나누게 되는 특수한 능력(?)중 하나이다. 고소공포증이라던가 폐쇄 공포증은 흔하게 이용해 먹는 단골 아이템이다. 누군가의 정신에 영구적인 장애가 남는것은 사람의 정신이 제각기 가지고 있는 한계때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 소연은 주인 잃은 고양이를 정성껏 보살피는 다정하고 따스한 모습부터 점점 자신을 죄어오는 극한의 공포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무언가 맥빠지는 느낌이 든다.

 

 

 

영화에서 연결시키고자 노력하는것은 고양이의 복수처럼 보이지만 결국 단발머리 소녀의 원혼이 생명을 경시하는것 같은 불특정 다수를 공격한다는것이다. 그다지 억울하게 죽은 느낌도 아니고 사고사에 가까운 죽음을 가진 단발머리의 소녀는 무엇이 그렇게 억울했던것일까?

 

생명경시풍조

 

흔히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고 한다. 인생에 있어서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의미인데 대부분 필요할때만 반려동물이고 그렇지 않으면 버려지는 동물들이다. 아마 애완동물시장은 한국에서 그다지 작은 규모는 아니겠지만 시장규모에 비해 사람들의 생각은 성숙되지 못한것 같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것은 결국 이기심이 기반이 되는데 이 이기심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에게도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아파트값이 떨어질것을 우려한 주민들이 고양이들의 은신처가 될만한곳들을 원천봉쇄하고 결국 떼죽음을 맞게 된다. 그런 고양이가 안타까웠던 한 소녀는 원한을 가진채 원혼이 되어 돌아다닌다.

 

영화는 공포영화라기보다 생명경시풍조 다큐멘터리를 본것 같은 느낌이다. 공포가 고양이에서 시작했지만 고양이의 눈빛을 이어받을만한 어떤 이슈도 찾을 수가 없다. 폐쇄된 환경에서의 죽음과 폐쇄된 환경에서의 의문사..머 이것도 충분히 예상가능하고 미스테리하게 등장했던 소녀의 원혼도 중반을 가기전에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그럼 남는것은 무엇일까?

 

고양이는 무섭지 않을뿐더러 우리의 반려동물로도 손색이 없고 우리 주변에 버려진 동물에게도 관심을 가지자는 다소 휴머니즘이 담겨진 감독의 의도가 묻어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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