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학생의 자살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때에 127시간이라는 영화의 의미는 삶에 끈을 놓지 않는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려주고 있다. 정신적인 부담감이라는것은 자신이 원하는만큼 보고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들어왔기 때문에 마음에 자발적으로 생겨난다. 다른사람과 주변사람 그리고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의 사이의 기대감 그리고 뒤쳐졌다는 자존심에 대한 상처를 못견딘다면 세상 모든것이 만만한것이 없다.
우리는 대학을 꼭 나와야 하고 카이스트를 갔으면 졸업해서 과학자 혹은 대기업, ETRI등에 취직을 꼭해야 하는가? 대학이라는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의 흔적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대학이라는 간판을 기준잣대로 사용하기 때문인데 모든 사람이 그 잣대에 부응을 할필요는 없다. 이넘의 잣대라는것이 넉넉하지가 않아서 누군가는 도태되고 누군가는 포기한다. 도태되는것이 아니라 새길을 찾아보는것이 어떨까?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 이야기’라고 로저 에버트는 <127시간>을 정의했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냥 죽어도 되는 사람도 없고 마음대로 자살해도 되는 사람도 없다. 2003년 4월의 어느 금요일 밤, 여느날 처럼 시작된 26살 청년 아론 랠스톤의 도보여행은 그로부터 6일 후, 그의 인생에 결코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겨준다.
길지 않은 시간을 삶이라고 불러가면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간다. 물론 여기서 돈도 명예도 모두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가치를 떠나 자신만의 가치라는것을 쌓아가면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내가 생각했을때 늦었을때는 이미 늦어버린 때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은 127시간에서의 주인공같은 삶을 살라는것이 아니라 아! 잘 살아왔다라고 생각하면 될듯 하다.
나는 살수 있을까?
재난영화나 127시간같은 영화를 보면 오지를 탐험하는 혹은 자신의 취미에 의해서 여행을 다니긴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 극한에 몰릴지 모르는 일이다. 영화를 보면 제임스 프랑코의 원맨쇼같지만 갇힌곳에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간다. 폐쇄된 공간같은 느낌에서 매우 역동적인 느낌이 드는 영화이다. 다큐멘터리 같지만 그냥 잔잔하지만은 않다.
나라면 자신의 팔을 자르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대답이다. 물론 그 상황까지 몰려가는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팔은 도마뱀의 꼬리처럼 쉽게 자르고 다시 자라날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도 없다.
영화속에서 아론 랠스톤은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가족이나 친구의 연락을 받기 싫으면 받지 않고 어딜 떠나도 누구에게 말해준적이 없다. 우리가 사는 삶이란 거미줄처럼 누군가와 끈끈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데 그중에 하나의 거미줄이 거미줄이길 포기한다. 수많은 거미줄중에 하나의 거미줄이지만 이 거미줄로 인하여 거미는 미끄러지고 다른곳으로 갈수가 없게 된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고립감은 지금까지의 가족, 친구, 여자친구의 의미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마치 공기가 있을때 고마움을 몰랐던것처럼 주변에서 나를 지켜봐주던 수많은 존재들을 아무렇지 않은듯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아론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주변사람들에게 다가갔나를 다시한번 생각케 한다.
삶의 여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언제가 끝날지는 모르지만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자연의 경관처럼 우리의 삶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을수도 있고 매우 좁은 시야를 보여주는 방안에 있을수도 있다.
영화는 단순히 한 인간이 어떻게 죽음의 순간에서 생존해 냈는가를 서술한 생존의 기록이 아니기에 의미가 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생명력과 용기의 본질의 근원은 자신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와 곁에서 우리를 지켜봐주는 사람들이었다. 자살이라는것은 나만을 버리는것이 아니라 주변에 잘 쌓아온 세밀한 피라미드같은 구조물에서 매우 중요한 돌을 하나 빼는것과 똑같다.
삶이라는것은 사회가 규정하는것도 아니고 경쟁이 만드는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뒤쳐진다고 해서 어떤이보다 못하다는 사회의 지탄을 받더라도 나름의 잣대로 나만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살아가는것이다. 자살 그것은 차악의 선택이 아닌 최악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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