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드라마)

일본 쓰나미의 참상이 느껴지는 영화 '히어애프터'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1. 3.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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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지진으로 인하여 일본뿐만 아니라 인접한 한국까지 들썩거리고 있다. 워낙 큰 지진이기도 했지만 쓰나미라는 이제는 익숙해진 단어덕분인지 남의 일같지 않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지금 일본의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등으로 인해 피해금액은 아직 추정도 되지 않은 상태이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지금 일본 원전에서도 방사능 유출 우려때문에 2차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세슘-137이 검출되었다는 뉴스도 나온상태이다.

 

죽음을 보는 남자, 죽음을 겪은 여자, 죽음과 함께하는 아이라는 컨셉을 가진 히어애프터는 맷데이먼이라는 연기력되는 배우의 등장으로 기대를 했던 영화이다. 실제로 영화초반에 프랑스를 강타하는 쓰나미는 뉴스로만 보던 검은 바닷물의 일본의 참상만큼이나 실제적인 느낌이 강하다.

 

쓰나미로 인해 죽음을 겪은 여자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갑작스런 쓰나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경험을 한 ‘마리(세실 드 프랑스)’는 관객들에게 쓰나미가 가진 파괴적인 위력을 전달한다. 비록 간접적이지만 일본이라는 거리상으로 근접하고 과거부터 연결되는 느낌이 있기때문인지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것 같다.

 

쓰나미가 무서운 이유는 그 거대한 에너지에 의해서 바닷물이 육지를 덮치는 파괴력도 있지만 모든것을 쓸어버리기에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적다는것이다. 온갖 무거운 물건을 쓸어버리는 쓰나미는 지금 이순간까지 일본에서 사망 혹은 실종자가 1,100명에 이르고 얼마나 더 늘어날지 예측을 할수가 없다.

죽음을 겪는다는것 행운일까? 비운일까? 사후경험을 한 마리는  사후세계를 파헤치며 보이는 사실만을 믿던 기자로서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적어도 예상 가능한 시기에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의 모든 가치를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정도로 죽음이라는것은 인생의 어떤 가치보다 유의미하다.

 

특히 거대한 힘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직접 목도한 사람이라면 그 의미가 누구보다 클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알아왔던 이세상의 모든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접하고 각자의 진실을 찾던 세 인물은 우연히 한 시점에서 만나게 한다. 모두 죽음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대중들이 원하는 삶에서 멀어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고 돈도 가지고 있었던 마리는 그일을 계기로 모든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른 두려움도 같이 가지고 살아간다.

 

죽음을 본다는 남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99%이상의 사람들은 죽음이 항상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병이 걸린다던가 2011년 3월 11일 일본의 대지진에 의해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은 매우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을 한다. 삶은 무엇보다도 가장 큰 가치를 지니며 죽음은 결코 겪어서는 안될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관점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언급하는 자체를 금기시 하고 있다.

 

죽음은 태어나는 순간 삶과 항상 연결되어 있다. 종이를 뒤집으면 반대편이 나오듯이 삶과 죽음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붙어 다니는 존재이다. 태어나면 사회에서 발표하듯이 한국평균 연령까지 쭉 이어놓고 보장된 삶을 살고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이다. 일본 2011년 3월의 대지진에서 보았듯이 갑작스럽게 죽음이 찾아오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과연 이런 재앙에 가까운 현실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영화에서 미국에 살고 있는 ‘조지(맷 데이먼)’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사후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주 특이해보이는 이 능력때문에 평탄하지 못하는 삶도 살게 되고  사랑하던 여인마저 떠나 보내는 불운의 주인공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만나볼수 없는 어떤이들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기대고 싶어할것이다. 그 사람은 그런 현실을 보면서 어떤 고통을 겪을지 삶에서 어떤 곤란을 겪을지는 생각하지 않은채 자신들의 상황만을 이해해주만을 바랄지도 모른다. 물론 드라마 시리즈 '고스트 위스퍼러'에서 멜린다 고든처럼 아주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가능하다면 저주라고 생각할 것이다.

 

죽음과 함께 한다면

 

영화 히어애프터는 사후를 인정하는 동양적인 색채를 그리고 있다. 물론 서양사람들이 사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동양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후의 세계관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사람들은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낸다는것은 이들이 후손들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보살펴주십사하는 마음에 제사를 열심이 지내기도 한다.

 

영화에서 런던의 소년 ‘마커스(조지 맥라렌/프랭키 맥라렌)’는 사고로 자신의 반쪽과 같은 쌍둥이 형을 잃고 삶 저편 세계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하고 저편 세계에서 형은 항상 동생을 돌봐주려고 노력한다.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작품이니 만큼 화끈한 재미나 복잡한 복선을 깔아놓지 않고 인생의 의미를 그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잔잔해서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초반에 쓰나미로 인해서 프랑스의 마을이 휩쓸려가는 장면은 일본의 쓰나미와 연결되어 생각할만큼 사실적이었다.

 

히어애프터는 죽음이 언제 어디서라도 있을수 있고 삶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것은 아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간에 이 세상을 구성하고 살아갈 의무가 있다.

 

죽음이라는것은 인생과 동떨어져서 사람들의 평균연령만큼 떨어져 있는것이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을 마감하길 바랄것이지만 알 수가 없다.

 

지금도 일본은 복구에 정신이 없고 언제까지 대지진으로 인한 복구가 마무리 될지 모르겠지만 빠른 복구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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