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드라마)

'아이들' 부모 가슴에 묻고 사회는 잊어버린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1. 3.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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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ren' society forgets to ask the parents in the chest.

 

아이들이라는 영화는 학교를 다닐 시절에 매스컴에서 끊임없이 나왔던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1991년 대구. 다섯 아이들이 실종된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아이들의 행방은 묘연한 가운데 다양한 입장에서 관객들을 사건과 마주함으로써 귀동냥으로만 알고 있던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의 실체를 보여주려고 주력한 영화이다.

 

매우 민감한 이슈중에 하나이다. 우선 당사자인 이 다섯소년의 부모들뿐만 아니라 자식이라는 것때문에 몰입도가 높아지는 대다수의 부모들때문이다. 아마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재구성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STAFF 감독 이규만 각본 이규만, 이현진 촬영 기세훈 조명 이은수
CAST 강지승 박용우 황우혁 류승룡 박경식 성동일 종호 부 성지루 종호 모 김여진

 

영화의 시사점은 크게 세가지로 좁혀지는듯 하다. 미디어의 횡포, 공소시효의 문제, 세상은 기억하지 않는다

 

미디어의 횡포  The tyranny of the media

 

1991년 이들이 사라졌을때만 해도 방송사가 가진 힘이나 조중동이 가지고 있었던 파급력은 지금과 비교를 할수 없을정도였다. 이당시에 이들이 어떤 정보를 실으면 그건 대부분 사실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언론들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돌아다닌다. 이들은 공익적인 목적보다는 사람들이 관심가질만한것에만 심혈을 기울인다.

 

영화속에서 좌천된 교양프로그램 PD 역의 박용우 역시 사람들이 분명히 화려한 부활을 꿈꾸던 언론일일 뿐이지만 결국 후반부에서는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감정이입이 되면서 일반인이지만 형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방송국 PD와 쿵짝이 맞아서 같이 활약(?)하는 캐릭터는 바로 대학교수 황우혁이다. 인지부조화라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론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바로 얼마전 포스팅을 했던 영화들에서 나온 내가 보고 싶은것만을 보고 내가 듣고 싶은것만 보려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속성과 유사한 이론이다.

 

즉 1990년대를 사로잡았던 지구의 종말 이론과 수많은 추종자들에 대한 문제 역시 인지부조화가 작용을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에 의해서 사물을 해석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공소시효의 문제 Statute of Limitations

 

아마 이 영화를 본 수많은 관객들은 바로 성동일의 대사처럼 '공소시효는 끝났어도 사건수사는 계속된다'이다. 과연 공소시효가 계속 존치되어야 할것인가는 매우 예민하면서도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다. 그냥 감정에 의해서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언급되어서는 이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소시효는 검사가 일정 기간 동안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에 국가의 소추권 및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우선 일반인이 범죄자라면 도주를 했던 숨기고 살았던 간에 공소시효기간동안 형벌기간에 해당하는 만큼 충분한 고통을 받았다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범죄자에 대한 판단을 검사가 공소를 제기해서 판사가 판단해서 형량을 결정한다.

 

문제는 공소시효가 흉악한 살인범을 단죄해야 된다는 이유로 폐지되어야 된다는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판사나 검사가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것이라는 사법맹신이 있다고 해도 우리의 공권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제사건만을 담당하는 조직도 없을뿐더러 각 경찰조직에는 그만한 여력이 없다.

 

실제로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흉악범죄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그중에서 몇건은 미제로 남는다. 이 미제로 남는 사건을 공소시효가 없이 계속 이들을 추적한다면 결국 살아있는 현재의 사건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미제로 남지 않아도 되는 사건들이 미제로 남게되어서 결국에는 누적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 공권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인원을 보충하는것이 쉬운일인가? 쉽지 않다. 예산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국민의 세금이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각종 범죄를 위해 현재의 자신의 생활을 궁핍하게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각종 권력에 의해서 공권력은 남용되곤하는데 이 남용되는 공권력을 조금이라도 줄인다면 흉악범죄를 조금이나마 감소시킬수 잇겠지만 권력에 의해 남용되는 공권력에 목청을 높여서 비판하는 시민단체를 찾아볼래야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래놓고 흉악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없애야 된다고 하는것은 근본적인 문제는 보지도 않은채 이슈가 발생하면 서명운동이나 주도하는 여론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  

 

흉악범죄라는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아니면 사회의 기준인가?

 

세상은 기억하지 않는다. The world does not memorise

 

영화에서 종호의 부모역할을 맡은 성지루와 김여진의 연기는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부모는 기억하지만 세상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이 서글프지만 사실이다. 세상의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사람들은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기억하지 않지만 아이들처럼 잊혀진 다섯 소년의 문제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점점 삭막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이제 아파트나 주택가를 돌아다녀봐도 노는 아이들을 발견하는것이 쉽지 않다. 모두 줄세우기를 하면서 학원을 보내는 실정에서 범죄자들이 범죄를 하는것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보는 눈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삶이 팍팍한 사람들의 아이들일 수록 밖에서 혼자서 노는 일들도 비일비재할것이고 이들을 지켜보는 눈들도 없어질 것이다. 결국 사라지거나 피해를 당해야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가 잠시 떠들석하고 다시 세상은 잊어버린다.

 

사회의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데 세상이 기억해줄수는 없다.

사회가 바꾼다면 보는눈들도 많아지고 결국 흉악 범죄 증가율을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단순히 감정에만 호소해서 공소시효의 문제만 언급하는 여론은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채 관심만을 끌어내려는 의도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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