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공포)

'나이트메어 (2010)' 꿈은 현실의 도피처가 아니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0. 5. 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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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라는 이름은 공포영화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공포영화면 그냥 공포영화지 머가 다를까? 라고 생각도 할수는 있으나 현실이 아닌 꿈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통 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자신에게 어떤 해를 못끼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꿈이라는것은 몸이 움직이지도 않고 생각만으로 이동을 하는 가상의 공간이다. 현실에서는 몸이 움직이지만 마치 가위에 눌린것처럼 꿈은 무기력하기만 한 영역일수 밖에 없다.

 

 왜 꿈일까?

 

본인은 심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지만 쓸데없이 여러분야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라는 책에 탐독을 한적이 있었다. 많은 심리학자들의 원서처럼 읽히는 책중 하나이다.

 

꿈이라는것은 보통 환자들이 병의 증상 대신 꿈으로 호소하는 경우가 있었다. 원작자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의도는 지금은 알 수 없으나 꿈의 연구자체가 노이로제 연구의 좋은 대상일뿐만 아니라 자체가 노이로제 일수도 있다.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라는 희대의 살인마는 바로 이 꿈을 파고 들어온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꿈을 개꿈 혹은 복꿈 두가지로 분류하면서 큰 의미를 두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꿈에서 깼을때의 기분이 때로는 하루종일의 분위기나 컨디션을 좌우하기도 한다. 꿈에서 상처입고 누군가에서 상처를 입히려고 했던 기억 그리고 살해를 당한 기억 자체가 현실화되는것이 바로 나이트메어의 기본적인 컨셉이다.

 

나이트메어에서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고등학생 이상의 성인이라는 점에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보통 왜곡돼지 않는 꿈은 어린아이들에게서 나타난다. 어린이들의 꿈은 짦으면서도 선명하고 모호하지 않고, 뚜렷하다.

 

즉 나이트메어의 공포의 대상 프레디 크루거는 왜곡된 꿈을 꾸는 성인에 가까운 나이에서부터 성인까지 광범위하게 전염병처럼 퍼진다는 점이다. 꿈은 어떤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표시한것이 아니라 환각적인 경험의 형태로 충족시켜왔는데 이 것은 환각적인 공포의 경험이라는 것으로 변이되어서 관객들에게 접근을 하기 시작한다.

 

꿈속에서 어떤 쾌감을 느낄때가 있고 절벽으로 떨어지는 공포를 느낄때도 있다. 보통 꿈속에서는 상징적으로 표현되는것은 많지는 않은편이다. 자신의 신체나 형제, 자매, 사랑, 분만, 죽음, 집 등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것이 벌어진다. '수면'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공격하는것은 인간의 가장 감추고 싶은 핵심을 공격하는것과 같다.

 

 재미있어졌나?

 

마이클 베이라는 걸출한 영화감독을 끌어들인 나이트메어는 과거의 나이트메어가 아닌 현대의 나이트메어로 재각색하는데 치중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과거의 프레디 느낌이 덜한 느낌이 들었다. 현대적이긴 하나 과거 어릴때의 공포가 잘 느껴지지 않은 느낌이랄까?

 

기본적인 스토리 구조는 과거 1편의 스토리와 같다. 엘름가에 사는 낸시와 친구들이 밤마다 같은 꿈을 꾸다가 한명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교도소에서 나온듯한 줄무늬 스웨터를 입고 하필이면 중절모를 쓴 한 남자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설정..그리고 잠에 빠져 꿈을 꾸게 되면 바로 죽음으로 가는 길임을 알게 된다. 각성제나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도 막을수 없는것이 눈꺼풀의 무게가 아닌가..의식이 있을지라도 뇌의 일부가 잠들어버리는 '마이크로 수면'상태가 되어버리니 탈출할 방법이 없다.

 

보통 공포영화의 얼개처럼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게 되지만 꿈을 꾸는 자체가 이완인지라 어떤것이 이완인지 생각하기 힘들어진다.

전작의 스토리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서일까? 비주얼과 사운드는 세련된듯 하지만 공포의 느낌은 좀 강도가 약한듯 하다.

 

 1984년

 

나이트메어의 첫 작품은 바로 1984년에 나왔다. 꿈속이지만 결국 프레디 크루거는 연쇄살인범의 일종이다.

 

미국의 10대 괴물이라고 불렸던 연쇄살인범은 대부분 19~20세기에 활동을 했다. 연쇄 독살자였던 리디아 셔먼, 대학살을 저질렀으면서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던 벨 거너스, 50명이나 살해했던 H.H. 홈스, 기독교에 심취해있으면서 자신이 집행자라고 생각했던 앨버트 피쉬, 얼 레너드 넬슨, 에드워드 게인, 하비 머레이 글래트먼, 존 웨인 게이시등 살인방법의 모든 유형이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극단적인 행태의 경우, 연쇄살인범들의 지배욕은 다른 사람을 완전히 수동적인 대상, 전형적으로 자신에게 속하는 일종의 인형이 되기를 요구하는데 자발적인 상대자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수 없었던 프레디 크루거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은 꿈속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공포의 상징

 

프레디  크루거의 상징은 바로 칼날이 달린 철갑 손이다. 물론 가위손의 그 가위와는 느낌이 다르다. 똑간은 칼날이지만 어떤것은 미적으로 사용되고 어떤것은 살인을 하는 도구로 사용이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에서 공포를 느끼고 망각하고 살아간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른채 세상을 다 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것이다. 자신도 제대로 모르는데 세상 돌아가는것을 어떻게 알것이며 하물며 타인의 생각 혹은 이성의 생각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냥 절충하면서 살아갈뿐인데..남들을 이해한다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다지 새로움은 없었던 나이트메어는 공포의 각색이라는 이름아래 조금은 감각적으로 조금은 식상한 그런 영화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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