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경상)

늦가을 통영으로의 여행

어린왕자같은 식객 2007. 12. 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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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일상의 도피라고 하면 너무 각박한 삶의 도피처 처럼 느껴진다.

 

여행은 일상의 하나로서 새로운 세상을 보고 또다른 느낌을 얻어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듯하다.

 

물론 개인적으로 떠난 여행이 아닌지라 여행을 가기위한 용기 같은것을 낼필요가 없었던 통영으로의 1박 2일 �F은 일정이었지만 나름 보는 재미 즐기는 재미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통영은 솔직히 초행길이었다. 역사책으로..한산도대첩을 이끈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그이름이 낯설지 않았을 뿐이다. 실제로 가서 보니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이기기에는 힘든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끌어냈던 이순신 장군에게 경의를 표한다.

 

실제로 일본이 지금도 경제대국이지만 그당시만 해도 조선에 비해 막강한 조직력과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당시의 상황으로 보았을때 당연한 수순으로 조선이란 땅을 넘봤을것이라고 생각된다. 걸출한 인물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란 인물이 있었고 그시대를 풍미했다. 조선은 선조라는 유약한 마음을 가진 임금과 당파싸움에 벼슬아치들이 눈을 가리고 있었어도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장군은 일본을 막아내지 않았던가..

 

너무 깊이 들어간것 같다. 화창한 봄날같은 늦가을에 통영으로..내가 지나온 길이 모두 고향이 되고 내가 잠든곳이 내 집이 된다는 여행 그러기에 통영도 내 고향이 된것인가?

 통영의 튜울립 팬션이라는 들어가는 초입에 찍은사진 역시 남해가 물이 맑다. 서해와 느낌이 틀린것이 수영하고 싶어진다.

 

 무척이나 잔잔한 물길이..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낚시배로 떠나기전 앞에 배들이 묶여서 태우고 갈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은 평일이라 그런지 무척이나 한산하다.

 

 드디어 낚시배로 고기를 잡으러 떠나고 있다. 이날 탄 배는 20인승이라서 그런지 울렁임이 적어서 대부분 배멀미로 고생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은 아무곳이나 사진을 찍어도 풍경이되고 사진작가로 만들어줄만큼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저 넒은 바다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살까?..무척이나 궁금해진다. 파랗다 못해..남색에 가까운 바다의 색깔이 무척이나 두텁게 느껴진다.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한다. 11월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해가 무척이나 �F은데 4시 반정도면 저런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점점 해가 져서 기울고 있다.

 

 이제는 저쪽의 수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버려서...해를 볼 수가 없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길에 한장

 

 도착해서 보니 붉은 노을만 남아서 바다가 무척이나 어두워보인다.

 숙소에 도착해서 숯불에 소고기를 구워먹으려고 숯을 준비중인데 이런 야외에 나와서 소고기는 썩 어울리는것 같지 않다. 바로 앞에서 구워서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조명이 밝지 않을뿐더러 고기를 구워서 운반해주면 벌써 식어서 소고기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그리고 소고기가 얇아서 너무 빨리 익는 바람에 가끔 너무 질기기 까지 한 고기가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서 숙소에서 바라본 풍광 마치 풍수지리에서 보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숙소 뒷편으로 올라가보면 갈대밭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도 잘나온다.

 아침 해장하러 들어간 호동식당. 통영에는 복국이 유명한데 여기의 복국은 8000원으로 비싼듯한 것이 아쉽다.

 호동식당의 기본찬..

 사진을 잘찍어야 되는데 그늘이 졌다. 복국인데 보면 숙주나물과 미나리만 보인다. 실제 다른곳의 복해장국하고 느낌이 틀린것이 국물이 무척이나 맑고 시원한것은 비슷한데 복어를 다른곳보다 작은것을 써서 끓이는데 고기가 무척이나 담백하고 고소한것이 일품이다.

 

 통영까지 와서 충렬사를 안보고 갈수가 없어서 들린곳이다. 조선시대 선조의 명에 따라 제7대 통제사 이운룡이 1606년에 세운곳이라는데 매년 봄, 가을 두차례 이순신 장군의 제사를 올리는곳이라 한다. 왼쪽의 기둥같은것이 홍살문의 기둥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곳으로 헌종 6년(1840)에 제 172대 이승권 통제사가 건립, 1913년에 큰 비로 훼철되었으나 1988년에 다시 복원하였다고 하니..20년정도 밖에 안되었다.

이순신 영정을 모신곳 왼편과 오른편에 단풍나무가 무척이나 큰것이 있다. 언제 심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정도로 자라라면 몇십년은 흘렀어야 가능할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곳으로  충렬사 사당이다. 해군은 이해가 가는데 육군은 무었때문에 여기에 저런 화환을 보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라를 지킨 분이라는것에서 모든 군인이 예를 올리는것일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면 당시 조선을 침략을 무척이나 반대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이 생각이 난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된다 .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것이 없다는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지 마라.

미치지 못하는것은 지나친 것보다 나은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풀잎위의 이슬도 무거워지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지나치면서 들른 달아공원에서의 통영의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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