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청양의 고즈넉하고 한적한 곳의 사당 표절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20. 8. 4. 07:28
728x90
반응형

청양의 대부분의 숙박시설이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이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도 많지만 마음대로 갈 수도 없는 것이 요즘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됩니다. 

 

청양에는 여러 사당이 있는데 대표적이 사당으로 최익현 선생을 모신 모덕사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청양에도 적지 않은 인물이 있었고 그분들을 모시는 공간들이 남아 있습니다. 

표절사에 대한 이야기는 청양군의 블로그를 보고 알게 되었는데요. 무더운 여름날 표절사를 찾아가보고 싶어서 발길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민가 안쪽으로 들어가면 표절사가 나옵니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이곳 입구를 찾는 것이 쉽지가 않겠네요.  

언신(彦信), 충민(忠愍) 양지를 모신 사당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삭녕에 와 있던 경기도관찰사 심대(沈岱)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적의 야습을 만나 끝까지 항전하다가 순사(殉死)한 것입니다. 

석축으로 만들어진 기단위에 올라오면 비가 먼저 나옵니다. 요즘에는 한자를 아는 사람이 많아서 관심이 없을 수 있지만 한자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청양의 문화재이니만큼 앞에 관리도 잘되었으면 합니다. 표절사까지 들어가는 길은 잡초를 피해 돌아들어가면 됩니다. 

표절사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칭찬하며 나라에서 그들의 고향에 세워주던 정려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 

표절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외삼문에는 단청을 칠한지 얼마 안되었는지 색깔이 진해보입니다. 우리의 건물에서 태극문양은 자주 사용이 됩니다. 태극 도형은 그 모양이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태극 문양만큼 심오한 뜻을 간직한 것도 드물다고 합니다. 태극 도형 속에는 우주 만물의 생성·소장(消長)의 이치가 숨어 있고, 조화와 상생의 원리가 함축돼 있습니다. 

표절사는 닫혀 있는 곳은 아니기에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습니다. 정면 세칸 규모의 건물인데 기둥은 아래 주춧돌로 받쳐 있습니다. 

 

표절사에 모셔진 양지는 죽은 뒤 정조 20년(1796) 이조판서로 증직 되고 충민이란 시호를 받았습니다. 그의 본관은 남원이며 적성 현감과 삭녕 군수를 지냈으며 양지가 임진왜란 때 종사관이라는 관직으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표절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5인 청양춘포짜기의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청양춘포짜기에 대해 접해보고 싶었지만 이날은 이정표를 보고 들어왔지만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춘포짜기는 1998년 12월 29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는데, 초대 기능보유자는 양이석(梁二錫, 1906∼1999)이며, 며느리인 백순기(白順基)가 기능보유자로 그 기능을 보존 전승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