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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조용하게 찾아가본 송강정철의 정송강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20. 5.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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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살아서는 진천 땅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 땅이 좋다는 뜻은 저도 진천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접한 말입니다. 진천에 총 44건의 문화재가 지정되어 있는데, 이 중 묘소만 9건이고 묘지나 지석 등 장례와 관련된 유물도 2건이나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철의 묘소가 있는 곳에 진천의 문화재중 하나인 정송강사가 있습니다.  정송강사는 주차공간도 넉넉한 곳이어서  다양한 행사도  열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서인의 영수이며 동인과 때론 대결각을 보였던 송강 정철은 술을 상당히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술과 관련된 시조만 20여 개나 되며 술과 함께 살았던 문학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봄꽃이 만개하는 계절이지만  조용하게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요즘에 봄여행은 조용하게 혼자나 가족과 보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정철의 장진주사라는 작품 속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그의 시들을 보면 풍류가이면서 자연 친화적인 사람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탐닉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곳곳에 정철의 시가 비에 새겨져 있습니다.  송강 정철은 그의 후손 정포가 묘를 이장하여 진천에 묻고 그를 배향하는 정송강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진천에 자리한 정송강사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9호로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시인인 송강 정철(鄭澈)의 위패를 봉안하는 사당의 역할을 합니다. 경내의 건물은 사당·내삼문·외삼문·홍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내삼문과 외삼문 사이의 좌측에는 송강 기념관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닫혀있는 기념관 내에는 송강의 유품인 은배(銀盃)·옥배(玉盃)·서간첩(書簡帖) 등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사당의 남쪽에는 묘소가 있으며 석물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지나쳐온 전각에 자리한 것은 진철 정철 신도비로 조선 현종 4년 1665)에 세운 것으로 천부적인 문재를 발휘하여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등 많은 가사와 단가를 지었는데 신도비의 글을 문정공 송시열이 지었으며 김수증이 전서하고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수많은 시조를 남겼으며 동인에게 원한을 샀던 송강 정철에게도 사랑의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581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되는데 이때 전라도 기녀인 진옥(眞玉)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옥은 정철의 호인 송강(松江)의 ‘강(江) 자를 따라 강아(江娥)라고 불렸던 연인입니다. 




정철에게 강아는 그 이상의 존재였으며 예술적 호흡을 가능케 만들어주는 현명한 여인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연과 벗 삼아 시조를 읊던 송강 정철의 흔적이 진천에 남아 있었습니다. 







타고난 문인의 기질을 발휘했지만 동인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임진왜란 바로 3년 전인 1589년 기축옥사 때 역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동인의 인사 1,000여 명을 처형하고 수백 명을 귀양 보내면서 동인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면서 원한을 사게 됩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적을 만든 때였습니다. 




생거진천의 의미를 추측해 보건데 살기 좋은 곳이라 많은 인물이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던가 후손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며 조상이 묘를 대거 이장해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송강 정철의 후손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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